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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1년 9월 9일 (목) 오피니언 www.christianherald.com
하나님과 함께하는 상담 (25)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 신정론 (3)
다른 사람도 나에게 잘 해 줄 것이 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져 줌으로써 이 힘든 주제를 피해 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께
라거나, 정의는 결국 승리하며 정 이 과정은 그동안 내담자 마음 가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는 우리의 죄를 일일이 계산하
직과 진실은 결국 남들도 알아줄 속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내담자 내담자의 신학적 수정 작업에 전 시면서 각 죄에 대해 처벌을 내리
것이라거나, 혹은 이 세상은 공평 를 안심시켜 왔던 이 세상에 대 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 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하다, 등의 신념들이다. 한 이상화된 그림을 상실하는 것 히려 내담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은 한없는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신념들은 이상적인 개념들 으로, 내담자에게는 많이 힘든 작 수 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이런 고통을 내
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업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화된 그 그 중 하나가 지금의 고통은 리신다고 말한다면 영적으로 연
에는 아쉽게도 항상 적용되지는 림을 수정하여 현실에 가까운 모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심지 약해져 있는 내담자의 하나님 이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와 같 습으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내담 어 하나님이 미리 계획한 것이라 미지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
송 경 화 교수
월드미션대학교 은 신념을 굳게 믿는 분들이 많이 자는 이 죄로 인해 한계가 많은 세 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맞을 수 다. 또 사탄이 너에게 이런 일을
있다. 그리고 이런 신념이 깨지는 상에서 사는 삶에 대한 성찰의 눈 도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 만들었다는 말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사탄이 그랬는지 상담사
“하나님은 전능하고 나를 사랑하 가 알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을 믿
시는데,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찾 이런 고통을 미리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앞으로 는 자의 삶을 사탄이 함부로 망가
아오는가?” 하는 질문이 신정론 뜨릴 수 있다는 가정 역시 성경적
적 질문이다. 기독교 상담사는 내 어떻게 믿고 따라갈 수가 있을까? 으로 온전하지 못하다.
담자로부터 종종 이런 질문을 받 상담사가 할 일은 내담자가 겪
는다. 준비 없이 이 질문을 받게 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려 노력하
되면 당황하고 긴장해서 판에 박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다른 모 을 가질 수 있고, 내적으로 성장할 만 내 삶에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면서 그가 그 고통을 견뎌 나가는
힌 이야기, 추상적이고 누구나 다 든 삶의 신념들까지도 한꺼번에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계획하 동안 함께 거기에 있어 주는 것이
할 수 있는 피상적인 이야기를 두 흔들리고 만다. 삶의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셨다는 말은 내담자에게 큰 아픔 다. 그가 고통받을 때 하나님 역시
서 없이 하게 되곤 한다. 당연하게 내담자의 말 속에 이런 신념들 전능하심도 하나님의 사랑과 돌 과 실망을 줄 수 있다. 이런 고통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고통
도 그런 말들은 지금 신정론적 고 이 발견된다면 상담사는 그것을 보심도 느끼지 못하는 내담자들 을 미리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앞 속에 함께 고통스러워 하시는 하
민을 하는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그냥 넘어가지 말고 그런 신념들 을 대할 때, “내가 고통당할 때 하 으로 어떻게 믿고 따라갈 수가 있 나님을 상담사를 통해 느낄 수 있
되지 않는다. 에 대해 내담자와 깊이 있는 대화 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는 신정 을까. 도록 해 주어야 한다.
신정론적 고민을 잘 살펴보면 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 정말 그런 론적 질문을 하는 내담자에게 상 무엇보다도, 이 고통이 하나님 그의 고통에 함께 하시며 무엇
거기에는 단순히 신학적인 내용 지, 그런 신념은 어디서 온 건지, 담사들이 매우 신중해야 하는 몇 의 뜻이고 계획인지 상담사는 모 보다도 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
뿐 아니라 그 사람이 당연시하는 만약 그 신념이 틀렸다면 뭐가 문 가지의 주제들이 있다. 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 것이다. 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
신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제인지, 대화를 나눠보고, 사실은 이런 질문은 상담사에게도 매우 그런데 상담사가 뭐라고 그런 식 으며, 그가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
들면, 최선을 다하면 최선의 결과 그렇지 않은 이 세상에 대해 내담 불편하기 때문에 상담사는 몇 마 으로 단정할 수 있겠는가. 또는 이 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
를 얻는다거나, 남에게 잘 해 주면 자가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받아 디의 단순하고 정답 같은 말을 던 고통이 너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 교 상담사의 역할이다.
생각하며 기도하며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
는 다름아닌 음향 환경이 열악해 그래서인지 교회 사이즈 비례 속에서 가난한 마음을 갖기란 말 그만 늦게 일어났다. 서둘러 교회
서이다. 아무리 잘 불러도 음향시 참석률은 작은 교회가 늘 더 높은 처럼 쉽지 않다. 환경이 조금만 나 로 갔지만 이미 교회 문은 닫혀 있
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전달력 편이다. 물론 그 이유가 작은 교회 아져도 바로 나태해지는 것이 인 었고, 다급한 마음에 교회 문 손잡
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작은 교 성도들이 큰 교회성도들보다 신 간의 마음이다. 조금 살만해지면, 이를 붙들고 그 앞에 서서 기도했
회에 음향전문가가 있을 리 만무 앙이 더 좋거나, 더 헌신적이어서 조금 여유가 생기면 바로 잊혀지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하고, 가보면 기본 세팅조차 안되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 는 것이 가난했던 마음이다. 그리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 있어 리허설보다 음향 세팅하 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의 상 그렇게 40일의 기도가 끝나고
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한 황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는 것 나는 놀라운 응답과 회복을 경험
조영 석 목사
찬양사역자 다. 그러다 보니 시간에 쫓기듯 집 이 우리들이다. 했다. 그리고 응답 주시면 다시 40
회를 시작할 때가 많고 실수가 발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처음 일 새벽기도 헌신하겠다 한 약속
생하기도 한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사랑을 책망하신다. 축복하시면 대로 두번째의 40일 새벽기도를
사역을 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은혜가 마음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40일 새벽
러 교회들을 가게 된다. 방문한 교 많은 곳이 작은 교회이다. 그 이유 가난한 마음을 갖기란 다. 부하게 하시니 부패하고, 높여 기도 때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회 중 외곽 지역 학교 시설을 빌 는 바로 열악한 환경처럼 성도들 말처럼 쉽지 않다. 주시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 이번엔 한번도 늦지 않고, 완벽하
려 예배를 드리는 성도 몇십명의 의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상대 환경이 조금만 나아져도 지고, 자유게 하시니 자유분방해 게 40일을 채웠지만 그 기도의 깊
작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수 천명 적으로 감사하는 마음 또한 크기 지며 매사에 도를 넘는다는 것이 이도, 간절함도, 눈물도 이전과 같
의 교인들이 함께 예배 드릴 수 있 때문이다. 바로 나태해지는 것이 다. 그래서 다시 가난한 마음을 갖 지가 않았다.
는 잘 지은 예배당과 교인 전용 카 큰 교회는 사람과 재정이 넉넉 인간의 마음이다 게 하시기 위해 가난한 환경으로 그래서 지금도 그때의 40일 새
페, 아이들 놀이터까지 있는 큰 교 하여 주기적으로 행사나 집회가 밀어 넣으실 때가 있다. 벽기도를 잊지 못한다. 나의 기도
회도 있다. 자주 있고, 유명한 사람들도 초청 오래 전 하나님께서 내게도 가 가 가장 간절했던 그때, 가슴이 아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 대로, 큰 할 수 있어 늘 풍성한 여건 속에 난한 마음을 갖도록 특별한 상황 리도록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했
교회는 큰 교회 대로 장단점이 있 있다. 오히려 행사가 잦아 교인들 속에 있게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던 그때,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확
는데, 가장 부담이 되면서도 은혜 이 원하는 집회만 골라 참석할 수 의 마음이 더 가난해서 그런 것은 비로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 인했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나의
가 많은 곳이 작은 교회인 경우가 있는 풍족한 환경 속에 있다. 그러 맞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고,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 마음이 가장 가난했던 그때에 올
많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유가 나 작은 교회들은 그렇지 않다. 재 지금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 처해 했다. 다시 하나님께 무릎 꿇고 나 려 드렸던 그 기도는 내 평생 잊지
같다. 부담되는 이유는 환경이 열 정이 넉넉치 않고, 게스트를 초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가기 위해 40일 작정 새벽기도 못할 것이다.
악해서이고 은혜가 많은 이유도 하기 어려운 셋방살이 하는 교회 우리는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 를 시작했다. 하나님은 새벽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
환경이 열악해서이다. 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누가 찾아 을 수 없다. 환경을 초월하며 믿음 눈물을 주셨고, 진심으로 기도할 니 천국이 그들의 것 임이요” –마
작은 교회가 부담이 되는 이유 온다 그러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으로 살아야 하지만 부유한 환경 수 있게 하셨다. 그러던 중 하루는 태복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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