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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hristianherald.com                      화 보                                                  2021년 9월 9일 (목)      3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제2차 연례대회에 참가한 각 지역 대표들 (1924년 시카고).

         다시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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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유학생 활동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은 유길준             영승, 강영대, 차의석, 송현주, 임정구,
                                                                                          이다. 그는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          양주삼 등 40여명이 있다.
                                                                                          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1883년 9월 보           2기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1918
                                                                                          빙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에 와서 선             년까지 8년 동안 망명으로 출국을 했
                                                                                          진 서양문물을 체험했다. 그는 혼자 남           는데 이들은 여행권 없이 ‘신도학생’

                                                                                          아서 관비 유학생으로 더머 아카데미             이라는 이름으로 도착했다. 이들은 일
                                                                                          라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한 후  본배척사상이 강했던 청년들로 재미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서유견문’이라            한인사회 건설과 조국 광복운동에 앞
                                                                                          는 여행기를 써서 서양문물을 처음 소            장섰다. 그리고 1930년 이후에는 미주
                                                                                          개했다.                            초기이민 사회의 중추세력이 됐다.
                                                                                            갑신정변에 관련되었던 개화당 인               3기는 1921년부터 1940년까지 일
                                                                                          사인 서재필은 1885년 미국으로 망명           본 총독부 여행권을 가지고 입국한 학
                                                                                          의 유학에 나섰다. 당시 박영효, 서광           생들이다. 이들 중에는 유학 후 귀국
                                                                                          범도 함께 미국에 공부하기 위해 입국            하거나 미국에 영주한 사람들도 있다.
                                                                                          했다.  서재필은  조지워싱턴의과대학              정치망명이나 신도 학생들은 ‘재미
                                                                                          에 다닐 때 윤치호는 에모리대학에서  유학생회’를 조직했다. 1913년 5월 4
                                                                                          수학했다. 도산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  일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에서 박
                                                                                          여사와 함께 1902년 유학을 목적으로  용만이 구성한 것이 최초였으며 회장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리고 독             은 박처우였다.
                                                                                          립협회에 가입해 옥고를 치르던 이승               유학생회는  상호친목과  학문연구
         1                                                                                만이 1904년, 역시 보안회 간부로 활          그리고 독립운동 등으로 활발히 활동
                                                                                          약하다 옥고를 치른 박용만이 1905년  했다. 유학생회는 하와이, 북가주, 남
                                                                                          네브라스카에 도착했다.                    가주, 오하이오 콜럼버스, 중가주 디
                                                      1.  뉴욕지부 ; 흥사단 뉴욕지부 단우들(1928          초기 미국 유학생들은 입국 년도별            이뉴바,  시카고  등지에서도  만들어
                                                       년 뉴욕).
                                                                                          로 3기로 분류할 수 있다. 1기는 1882        졌다.
                                                      2  독립외교의 두 주역 ; 임시 대통령 이            년 한미조약부터 1902년까지 망명 혹             1921년 4월 30일 ‘북미대한인유학
                                                       승만과 구미위원 부위원 정한경이 조국독              은 유학을 목적으로 온 이들이다. 이            생총회’가 뉴역에서 열렸다. 이 때 처
                                                       립운동과 한인사회의 단결을 의논하고 있              때  도착한  학생들로는  박영효,  백상         음으로 학생단체의 통일을 이루었다.
                                                       다. (1920년대)
                                                                                          규, 이대위 등이 있고 하와이 이민시대           1924년 3월 1일에는 국한문으로 유학
                                                                                          (1903~0905년)에 이강, 신성구, 신흥       생회 잡지를 창간했는데 제호를 롸키
                                                      3.  흥사단 단소 ; 1932년 로스앤젤레스시 USC
                                                        캠퍼스 앞으로 옮겨진 흥사단 본부.               우, 백일규, 임두화, 이원익, 정한경, 강        (Rocky)로 하고 3년간 발행했다.

                                                      4. 초기 한인 유학생들 (1917년)

         2                                            5.   도산추도식 ; 서울에서 안창호가 서거하자
                                                        1938년 3월 20일 LA에서 대한인국민회
                                                        주최로 도산의 추도식이 USC캠퍼스 앞에
                                                        있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거행됐다.

                                                      6.  오렌지 따는 도산 ; 안창호는 1900년 초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
                                                        서 일하며 한국독립을 꿈꿨다. (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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