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남미복음신문_768호]2021년 1월 8일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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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오피니언 2021년1월8일 금요일 11
분열과 반목의 시기 ‘그리스도인 교회’는 움트기 시작
이강평 총장
환원운동 을 미스는 ‘자유교회’를 설립 동의 주요 문서인 ‘선언과 제 다양한 배경에서 시작된 운동 그리스도의교회 교인이었다.
언’(1809년)을 발표하며 분열
이지만 ‘신약성경에 기초한
오바마의 취임 국가기도회에
했다. 이후 이들은 ‘그리스도
말한다 인’ 이외에 다른 이름을 거부 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그리 단순한 믿음’이 성서적이라는 서 설교한 샤론 와킨스 목사는
하고 오직 성경만을 권위로 받 스도와 성경을 강조했다. 캠벨 공통의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 ‘그리스도인 교회, 그리스도
아들였다. 은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곳 의 기초로 스톤과 캠벨은 연합 의 제자들’의 총회장이었다.
바톤 스톤은 법률가를 꿈꾸던 에서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을 이룰 수 있었다. 스톤과 캠 또한, KFC의 창립자인 커넬 샌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장로 곳에서 침묵한다”는 유명한 벨은 1824년 켄터키주 조지타 더스도 그리스도의교회 교인이
교 목사가 됐다. 마침 제2차 대 말을 남겼는데, 이것이 환원운 운에서 처음 만났다. 이 만남에 다.
각성운동이 뜨겁게 일어나고 동의 중요한 슬로건이 됐다. 서 자신들의 생각이 서로 닮았 그리스도의교회는 비록 여러
<7>미국 환원운동의 역사
있었다. 영적 갈급함을 느끼는 캠벨의 아들 알렉산더가 아버 다는 것에 놀랐다. 여러 만남과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른 길을 걷
사람들은 천막 집회를 찾았다. 지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건 토론 끝에 1831년 성탄절에 두 고 있지만 하나의 뿌리에서 시
1801년 8월 케인 릿지에서 열 너왔다. 미국으로 오기 전 이미 진영은 연합하기로 합의했다. 작된 형제 교회임을 되새긴다.
환원운동은 1800년경 미국에 린 천막 집회에 수만명의 사람 그래서 환원운동의 교회들은
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의 종교 이 운집했다. 스톤은 “복음은 진영과 신학 노선, 주장을 내려
상황은 복잡했다. 유럽에서 전 보편적이며, 복음을 믿는 믿음 놓고 한자리에 모여 환원운동
래된 교파들이 제각각인 교리 이 구원할 것”이라고 설교했 의 정신을 이어간다. 그것이 바
와 신조로 반목과 분열을 반복 다. 이는 칼뱅의 예정과 선택에 로 ‘그리스도의교회 세계 대
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회’다.
황금을 찾아 신대륙에 온 이들 결국, 스톤은 워싱턴 장로회로 대회는 1930년 미국 워싱턴
은 향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부 부터 출교당했다. DC에서 첫 모임을 시작했으
인하고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 스톤은 동료들과 스프링필드 며, 2021년 폴란드 와소에서
다. 이런 분위기에서 천막 집회 장로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1 20번째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가 개최돼 타락한 이들에게 회 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장 이 모임에는 미국뿐 아니라 전
개를 촉구하는 대각성운동이 로회를 설립하는 것이 대안이 세계 200여개국의 그리스도의
뜨겁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직 교회 교인들이 모여 환원정신
이런 혼돈의 시대에 사도들의 을 해체한다. 이때 환원운동의 을 되새긴다.
전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환 주요 문서인 ‘스프링필드 장 글래스고대학에 머물 때 성경 공식적으로 1832년 1월 1일은 현재 미국에서 환원운동에 속
원운동이 움트기 시작했다. 제 로회의 유언서’(1804년)가 발 적인 교회에 대한 깨달음을 갖 스톤과 캠벨이 함께 환원운동 한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
임스 오켈리는 감리교 목회자 표된다. 인위적 조직이 아닌 고 있었다. 을 펼친 날이 됐다. 다. 교회 수는 2만2000여개로
였으나, 1784년 미국 감리교회 오직 성경의 ‘그리스도인 교 미국에 도착해 아버지의 ‘선 미국의 대통령과 사업가 가운 교인 수도 400만명에 이른다.
가 조직될 때 감리교회를 탈퇴 회’로 머물기로 선언한 것이 언과 제언’을 읽은 알렉산더 데 그리스도의교회 지도자들이 이 중 사우스이스트 그리스도
했다. 이듬해 8월 오켈리는 성 다. 는 흥분했다. 아버지가 자신과 여럿 있다. 20대 제임스 가필 의교회 성도는 2만명으로 미국
경의 단순한 이름을 따라 ‘그 토머스 캠벨은 스코틀랜드 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 드 대통령(그리스도의교회 목 3대 교회로 손꼽힌다. 이처럼
리스도인 교회’를 시작했다. 래스고대학에서 수학 후 장로 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 사), 36대 린든 존슨 대통령(그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교 목사로 활동하다가 건강 때 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와 함 리스도의교회 장로), 40대 로 는 환원운동은 꾸준히 성장하
되시기에 회중 정치를 표방했 문에 1807년 미국으로 건너갔 께 브러시 런 교회를 시작하며 널드 레이건 대통령(그리스도 고 있다.
다. 다. 미국에서 설교 자격을 얻어 23세의 나이로 안수를 받았다. 의교회 교인)이 대표적인 인물 서울기독대학교
엘리아스 스미스와 아브너 존 목회하던 중 성경을 깊이 연구 이후 알렉산더는 뛰어난 지성 이다. 이강평 총장
스는 침례교인이었다. 1801년 하며 깨달은 바를 가르쳤다. 과 영성으로 환원운동의 핵심 특히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
의사로, 설교가로 활동하던 스 이때 캠벨은 또 하나의 환원운 지도자가 됐다. 령은 시카고의 트리니티 연합 www.nammicj.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