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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환우에게 보내 드리는 편지]
                                                                                          가지 않은 길





           님께,
           장마와 태풍의 소식을 뒤로하고 어느새 가을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내고 있네요. 잘 지
           내고 계시는지요?
           환우분들에게 어떤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님에게 드리는 편지로 대
           신하면 좋을듯하여 몇 자 적습니다.

           손 떨림으로 처음 방문하셨던 날을 기억하시겠지요?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파킨
           슨병’을 말씀드렸을 때 느꼈을 그 복잡한 감정도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시간이 좀 지
           난 터라 죄송하게도 저는 그 기억이 그렇게 생생하지는 않고 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생각이 무엇이었던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저로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파
           킨슨병 진단에 대해 제가 드렸던 말씀이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느끼셨으리라 그저 짐
           작해 볼 뿐입니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서 증상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즐거워하시
           던 표정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약물은 조금씩 더 늘어가기는 했지만, 안 하던
           운동도 꾸준히 하시면서 ‘약 먹는 것 외에는 불편함이 없는’ 비유하자면 ‘신혼기’ 같은
           기간을 보내셨고요.

           그런데 어느 날 울음기를 머금고 외래를 방문하셨지요. 안타깝게도 진단은 우울증이었
           습니다. 사실 파킨슨병 초기 진단 때에도 우울증 점수가 좀 높기는 했지만, 초기 약물
           반응이 좋아서인지 증상이 발현은 되지 않았었고 아마도 조금씩 변해가는 몸의 상태,
           가정환경 등이 가져온 변화를 견뎌내기 어려워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셨던 것 같습니
           다. 그 후로 외래 방문주기를 짧게 하고 상담 시간을 늘리고 우울증 약물을 추가하면서
           증상이 좋아져 함께 즐거워했던 일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제 한계를 탓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떨림이 잦아든
           대신에 걸음의 어려움이 조금씩 가중되고 약을 먹으면 꼬이는 증상이 생기는 등 파킨
           슨병의 자연 경과에 따라 피할 수 없는 변화 단계에 접어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








           10  Dear  Dr. James Par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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