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남미복음신문_제846호]2022년 8월 26일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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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오피니언                                              2022년8월26일 금요일


       ■ 여용주 목사의 역사탐방 ■                                         제 1 장로교회로, 현재 히오             날의 바이아 장로교회(Igreja           는  브라질로  가기로  결심하
                                                                끌라로 시 중구 제 5가 1445           Presbiteriana da Bahia)를 조직할   여, 1862년 히오 지 쟈네이로
                브라질 개신교회 역사 31                                  번지(Rua 5, 1445, Centro, Rio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에 도착하였습니다. 영어 교사

                                                                Claro)에 서 있습니다. 이듬해          는 현재 사우바도르 시 나자레             로 일하면서 장로교회 선교사
                        슈나이더        치한 히오 끌라로에 장로교회             인 1865년에는 사이먼튼 선교            동 멍게이라 가 17번지(Rua da         들의 사역을 돕기도 하고 브라
                      선교사의 사        를 세우고 독일 이민자 공동체            사, 그리고 선배 블랙포드 선             Mangueira, 17, Nazaré, Salvador)  질 여러 지역을 여행하기도 하
                      역             를 중심으로 사역하다가, 그들            교사와 함께 히오 지 쟈네이              에 서 있습니다. 수년 후 슈나            던 그는 1866년, 히오 지 쟈네
                        프란시스        이 성경을 배우는 것이나 경건            로 노회를 창립하였습니다. 2             이더 선교사가 미국으로 돌아              이로 노회의 두 번째 회의에서
                      요셉 크리스        한 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고             년 후 사이먼튼 선교사가 사망             갔을 때, 챔벌레인 선교사가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후
                      토퍼 슈나이        오직 종교 행사에만 열심인 것            하자, 다시 히오 지 쟈네이로             교회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선              그는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에
                      더  목사는        을 보고, 이듬해 다시 히오 지           장로교회로 돌아와 담임목사               교사역을 이어받았습니다.                브라질 교회의 대표로 참석하
       브라질에 파송된 세 번째 장              쟈네이로로 가 사이먼튼 목사             인 블랙포드와 함께 동사목사               챔벌레인 선교사의 사역                였으며, 로버트 레닝턴(Robert
       로교회 선교사입니다. 1832년            가 시무하는 히오 장로교회에             로 섬겼습니다. 브라질 노회의               조지  와이트힐  챔벌레인             Lenington) 목사와 죠엉 페르
       프러시아의 에르푸르트(Erfurt)          서 동사목사로 섬겼습니다.              북부 선교 정책에 따라, 그는             (George Whitehill Chamberlain)   난데스 다거마(João Fernandes
       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함께              하지만 1864년에 히오 끌라           1871년 가족과 함께 바이아             선교사는 처음에는 교육선교               Dagama) 장로가 브라질 선교
       미국으로 이민 간 독일인으로,             로 주민들의 간청으로 다시 그            주 사우바도르로 거처를 옮기              사로 브라질에 파송되었습니               사로 파송 받을 수 있도록 도
       수년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              곳으로 사역지를 옮겼는데, 얼            고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시작              다. 1859년 유니언 신학교를            왔습니다.
       하였습니다. 1861년, 블랙포            마 지나지 않아 동일한 문제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은             졸업한 후 교사로 일하던 중                              여용주 목사
       드 선교사와 같은 웨스턴 신학             봉착하였습니다. 그래서 슈나             그때나 지금이나 로마 카톨릭              블랙포드  선교사를  만난  그                (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교를 졸업한 그는 목사 안수를             이더 목사는 독일 이민자 공동            의 대주교좌와 아프리카 토속
       받자 마자 브라질로 파송되어              체에서 나와 그 지역의 브라질            종교인 깐돔블레(candomblé)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12월 7일에 히오 지 쟈네이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             가 왕성한 곳이어서, 개신교
       에 도착하였습니다. 주로 브라             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교회            선교가 결코 쉽지 않은 곳이
       질의 독일 이민자들에게 설교              가 조직될 만큼 성장하였습니             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본 신문의 간추린 소식을 카톡으로 받고 싶으
                                                                                                          신 분들은 “카톡 아이디 kkkiu79”를 친구추가
       하며 사역 준비를 마친 그는,             다. 이것이 히오 끌라로 장로            고, 슈나이더 선교사는 이듬해                          하시고 “소식원함”이라고 메세지를 보내주시
       1862년에 거처를 상파울로로             교회(Igreja Presbiteriana do Rio   에 사우바도르 장로교회(Igreja
                                                                                                          면 매주 카톡으로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옮기고 상파울로 주 내륙에 위             Claro), 오늘날의 히오 끌라로         Presbiteriana de Salvador),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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