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남미복음신문_770호]2021년 1월 22일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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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오피니언                                               2021년1월22일 금요일


                                           평양 대부흥운동 목격 커닝햄, 환원운동 주춧돌 놓아
          이강평 총장

            환원운동           을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               가 31년 커닝햄의 요추야선교             고용된 교사였다. 그는 37년 3            을 방문한 후에 서울 내수동 그
                                                                                               월 신당정 그리스도의교회를
                                                                                                                             리스도의교회를 시작했다. 그
                                    였다. 커닝햄은 36년 하나님의
                                                                  회의 조선지역 포교관리자 신
                          말한다       부름을 받을 때까지 도쿄에 한              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32년            개척하고 담임목사로 사역했                는 환원운동을 설파했으며 교
                                    국인 교회 3개, 국내 12개 교회           6월 11일 성 목사는 조선총독            다. 최상현 김문화 백낙중 박판             회를 개척하는 일에 주력했다.
                                    를 후원하며 한국 그리스도의               부에 ‘동경사곡선교회 기독교              조 성낙소 목사 등이 이 훈련원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을 중
                                    교회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              에서 공부한 뒤 그리스도의교               심으로 활동하며 많은 그리스
                                     한국에서는 성경을 통한 자각              했다. 그리스도의교회가 역사              회의 목사가 돼 교회를 개척했              도의교회를 격려하고 후원했
                                    으로 시작된 환원운동도 있었               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다. 채이스 선교사는 그리스도              다. 그리스도의교회의 한국선
                                    다. 원래 구세군 사관이었던 성              그리스도의교회 선교를 위해              의교회가 한국에 자리 잡는 데              교는 다른 교단에 비교해 한 세
        <9>한국 그리스도의교회 역사
                                    낙소 목사는 19년 충북 영동에             입국한 선교사는 마이클 쉘리              확고한 기초를 놓았다.                  대 늦게 시작됐다. 선교사가 입
                                    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성 목             다. 그는 35년 3월 입국했지             또 하나의 환원운동은 미국에              국했을 때는 이미 장로교와 감
                                    사는 성경 연구를 하다 성경의              만, 건강의 이유로 7개월여 만            서 직접 그리스도의교회를 접               리교 선교사들이 선교지 분할
        그리스도의교회는 오순절 마              가르침대로 따르는 교회에 대               에 돌아가며 후임으로 존 채이             한 경우다. 동석기 목사는 함경             협정을 맺은 후였다. 사도 바울
       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              한 자각을 얻었다. 그는 구세군             스 선교사를 추천했다. 채이스             북도 북청 출신으로 미국 노스              이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
       로 시작됐다. 성령의 임재는 교            사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충               선교사는 일본 요추야선교회               웨스턴대학교와 게렛신학교에                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
       회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미국의 환원운동은 제2차 대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
       각성을 토대로 출발했다. 바톤                                                                                                      이라”(롬 15:20)고 고백하듯
       스톤에 의해 주도된 케인 릿지                                                                                                      이 그리스도의교회는 복음이
       의 성만찬 천막집회는 환원운                                                                                                       전파되지 않은 오지와 낙도로
       동의 출발점이 됐다. 한국의 환                                                                                                     향했다.
       원운동은 1907년 시작됐다. 그                                                                                                     현재 한국의 그리스도의교회
       해 일본 요추야선교회의 윌리                                                                                                       는 전국적으로 500여개의 2만
       엄 커닝햄 선교사는 ‘중국 개                                                                                                      여 교인들이 “성경으로 돌아
       신교 선교 100주년 기념 선교                                                                                                     가자”는 환원운동을 펼치고
       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                                                                                                       있다. 교단 소속으로 서울기독
       국 상하이로 가는 길에 한국을                                                                                                      대와 KC대가 있으며, 부산 동
       경유한다. 커닝햄은 한국에서                                                                                                       서대,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
       평양 대부흥운동을 목격하고               남 부여로 돌아가 교회를 개척              의 사역을 마치고 36년에 입국            서 수학했다. 감리교 목사가 돼             대 등도 환원정신으로 설립된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한국 선교            했다. 성경의 이름을 따라 교회             해 서울 송월동에 건물을 빌려             13년 귀국했다. 그는 27년 다            교육기관이다. 서울자동차고등
       에 관심을 갖게 됐다. 커닝햄             이름을 정했는데 기독지교회                ‘기독교회 선교부’를 설립했              시 도미하는데, 이때 미국 그리             학교와 등촌중학교 등도 환원
       은 23년 한국인을 위한 선교를            (基督之敎會)였다. 즉 그리스도             다. 격월간지 ‘한국인 전령’             스도의교회를 접한다. 그리스               운동에 속한 교육기관이다. 그
       도쿄에서 시작했으며, 26년 한            의교회였다. 성 목사는 일본에              을 발간했으며, 한국성서훈련              도의교회 신학대학원인 신시내               리스도의교회에 속한 주요 인
       국인을 위한 최초의 그리스도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              원을 설립했다. 한국성서훈련              티 성서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물로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장
       의교회를 설립했다. 최초의 한             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의              원은 이후 그리스도의교회 사              환원운동을 배우고 ‘미국 환               성만 목사, 맨발의 성자로 잘
       국인 그리스도의교회가 서울               커닝햄 선교사를 찾아갔다. 그              역자들의 산실이 됐다. 이 훈련            원운동의 초기 역사’라는 논               알려진 최춘선 목사, 서울기독
       이 아닌 도쿄에서 시작된 것은             는 커닝햄을 통해 환원운동과               원의 최초 학생은 김요한 목사             문으로 졸업했다. 30년 11월             대 명예총장 최윤권 목사 등이
       흥미롭다. 커닝햄은 24년 서울            그리스도의교회에 대해 깨닫                다. 그는 미국 에머리대학교를             다시 귀국한 그는 고향 북청을              있다.
       선교기지(포교소)를 시작했고,             게 된다. 그는 일본 내 한국인             졸업한 감리교 목사로 채이스              중심으로 여러 개의 그리스도                            서울기독대학교
       30년 서울 제1교회가 설립될             그리스도의교회에서 목회하다                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의교회를 개척했다. 39년 미국                             이강평 총장











                                                한인회비 납부 안내





            경기 불황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음                                                            한인회비 납부방법
          에도 불구하고 한인회에 많은 관심과 격려 및 협조를 아끼지
          않으시는 한인 동포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 기본금액
            제36대 한인회에서는 한인 동포 여러분의 한인회비 납부를                                              회   비 : 월 R$30,00 (연간 R$360,00)
                                                                                         후원금 : 후원자 자율결정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 납부방법 : 은행입금 및 직접전달
            납부해 주신 회비는 투명하고 정직하게 한인회가 추진하는                                               은행계좌 - Banco Bradesco, ag : 1767, c/c : 1713-2
          활동과 한인 동포 여러분의 위상강화 및 권익증대를 위한 활                                                             (DAIL DAE IL SONG / CPF:224.225.678-51)
          동에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 입금자 성명표기 요망
                                                                                     3. 연락처 : 97646-4895 (한인회 재무위원장 송대일)
            또한 정확한 보고를 통해 믿을 수 있는 한인회로 거듭나도
                                                                                         * 입금 후에는 꼭 담당자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록 노력하겠습니다.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브라질한인회장 홍창표(Nelson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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