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남미복음신문_847호]2022년 9월 2일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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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오피니언                                                2022년9월2일 금요일


       ■ 여용주 목사의 역사탐방 ■                                         속 늘어 새 부지를 구하던 차             교 대학교(Escola Americana       (Thomas Jefferson Bowen) 선교
                                                                에, 학부형 중 한 명인 마리             e Universidade Presbiteriana   사가 가족과 함께 히오 지 쟈
                브라질 개신교회 역사 32                                  아  언또니아(Maria Antônia)       Mackenzie)’입니다. 이 종합         네이로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후작부인이  이지에노뽈리스               학교는 150여 년이 지난 지금            들은 미국에서 아프리카 서부
                        맥 켄 지       부임하였습니다. 이듬해, 챔             (Higienópolis)에 위치한 자신       도 이지에노뽈리스에 위치해               에서 노예로 잡혀온 흑인 부
                      (Mackenzie)   벌레인  목사  부부는  자신들           의 농장을 챔벌레인 선교사 부             있습니다.                        족인 요루바(Ioruba) 족을 대상
                      의 설립          의 사택 거실에서 노예 출신             부에게 팔았습니다. 챔벌레인               미션 스쿨인 맥켄지에 세워진             으로 사역을 한 경험이 있어
                       1862년 미      아이들, 또는 로마 카톨릭교             목사는 새 부지에 필요한 시              첫 건물의 머릿돌에는 다음과              서 요루바 어를 할 줄 알았습
                      국 북장로교        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             설 건설을 위한 후원처를 구하             같은 성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도 요
                      회로부터 교        나 일반학교를 다닐 수 없는             여 건물들을 지은 뒤, 드디어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             루바 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
                      육선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당을 열             1879년에 학교를 옮기게 되었            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             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흑
       파송 받은 조지 챔벌레인은 4             고 이름을 ‘미국학교(Escola          습니다. 상파울로 장로교회 목             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언어
       년 후인 1866년에 히오 지 쟈           Americana)’라고 붙였습니다.        사관에서 학당을 개설한 지 꼭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로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 브라
       네이로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몇 달 만에 더 이상 거실에서            10년 만이었습니다.                  아멘(딤전 1:17).”                질 당국의 의심을 불러일으키
       받은 후에도 여전히 교육사역              가르칠 수 없을 만큼 학생들이             챔벌레인 선교사 부부의 이               침례교회 선교                     게 되어, 바우엔 선교사 부부
       을 병행하였습니다. 목사 안              많이 늘자, 학교는 교회 부속            러한 교육사역은 미국에도 널               미국 북장로교회가 파송한 첫             는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교              건물로 옮겼습니다. 학생들이             리 알려져서, 브라질에 한 번             선교사가 아직 브라질에 도착
       회 개척사역에 매진하게 된 챔             계속 늘어 교회 부속건물도 비            도 와본 적이 없는 변호사 존             하기 몇 달 전인 1859년 3월                           여용주 목사
       벌레인 선교사가 또한 교육사              좁아지자, 1876년에 이삐렁가           맥켄지(John T. Mackenzie)와 두    30일, 토머스 제퍼슨 바우엔                 (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한 것              대로(Avenida Ipiranga)와 성 죠   여동생이 거액의 장학금을 기
       에는 아내 메리 앤 애너슬리              엉 대로(Avenida São João)가 교   부하였습니다. 이에 감사하는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챔벌레인(Mary Ann Annesley       차하는 곳에 위치한 건물로 옮            마음으로 챔벌레인 선교사는
       Chamberlain) 사모의 조력이 컸       겼습니다. 마침 교인 수도 급            학교 이름에 ‘맥켄지’를 덧
       습니다.                         증하여, 교회도 같은 곳으로             붙이고, 교수진을 꾸려 ‘맥켄                           본 신문의 간추린 소식을 카톡으로 받고 싶으
                                                                                                          신 분들은 “카톡 아이디 kkkiu79”를 친구추가
        1869년, 챔벌레인 목사는 블           옮겼다가 1884년에 다른 곳으           지 대학(Mackenzie College)’                  하시고 “소식원함”이라고 메세지를 보내주시
       랙포드  선교사가  조직한  상            로 옮겼습니다.                    을  설립하였습니다.  이것이
                                                                                                          면 매주 카톡으로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파울로 장로교회의 담임으로                 ‘미국학교’  학생들이  계           ‘맥켄지  미국학교  및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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