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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22. 09.23 (금) NO.4464 19■
들의 일치된 전언이다. 이들 명작 회 러시아 출신의 작가가 파리를 거쳐서 한 차례씩 96차례 종소리가 울렸다. 장
화들은 구입 당시 가격보다 수십 배에 남프랑스 생폴드방스에 정착한 노년에 례식을 집전한 데이비드 호일 웨스트
서 수백 배까지 올라 각기 수백 억대 만든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민스터사원 사제는 “엘리자베스 2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추는 사람들을 꽃과 정물, 동물과 함 여왕이 결혼하고 대관식을 올린 이곳
이 회장은 나중에 돈이 되느냐보다는 께 그려서 아름다운 생의 순간을 몽환 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후대인들에게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적으로 표현했다. [문화일보] 장재선 의 긴 생애와 헌신을 추모하며, 그를
남겠는지를 따졌다고 한다. 선임기자(jeijei@munhwa.com) 주님의 자비로운 품속으로 보내기 위
윤 관장은 “세계 보물이라고 할 수 해 전 세계에서 모였다”고 말했다.
있는 서구 명작들을 우리나라가 소장 떠날 때도 영국 그 이날 장례식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하고 있었다는 게 놀랍고, 그것을 국 설교하고,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가에 기증해서 일반 국민이 실물로 우 자체였다 성경을 봉독했다.
리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9월 중순의 새벽 날씨가 비교적 쌀쌀
한 놀랍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사원서 국장 엄수 했지만, 조문객 상당수는 전날 밤부터
“해외 미술관들이 각 작가의 회고전 세계 각국 정상·왕족 500명 참석 런던에 도착했다. 해가 뜨기도 전부터
을 할 때 우리에게 대여를 요청할 수 수백만 인파, 퀸 마지막 길 배웅 운구 행렬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을 차
밖에 없기 때문에 세계 미술계가 우리 영국 최장 재위(70년) 군주로 역사의 지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잡기도 했다.
를 주목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2세 런던에서 약 100㎞ 떨어진 베리세인트
다. 여왕의 장례식이 19일(현지시간) 영국 에드먼드에서 하루 전에 런던에 도착
이번 전시에 나온 피카소의 도자 작품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엄수됐다. 했다는 한 형제는 BBC방송에 “자리 잡
은 작가가 60대 후반부터 열정적으로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여왕이 즉위 1년 기가 (런던 최대 축구 경기장인) 웸블
작업한 것들이다. 조각과 회화를 아우 여 만인 1953년 대관식을 치른 장소이 리 스타디움의 VIP석을 구하는 것 같
르는 작품들로,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 자 1947년 남편 필립공과 결혼식을 올 다”고 말했다.
보인다. ‘큰 새와 검은 얼굴’(1951), 린 역사 깊은 곳이다. 장례식은 왕실 백파이프 연주자가 여
‘황소’(1955) 등은 사람의 얼굴과 동 이날 오전 11시 55분 웨스트민스터사원 왕의 영면을 기원하는 자장가를 연주
물들을 주로 다뤘던 도자 작품의 특징 에는 ‘마지막 임무’라는 뜻의 ‘라 하는 것을 끝으로 정오를 조금 넘겨
을 잘 보여준다. ‘이젤 앞의 재클 스트 포스트’ 나팔 연주가 울려 퍼졌 막을 내렸다. 이후 여왕의 관은 장례
린’(1956)은 피카소의 마지막 여인이 다. 묵직한 연주가 끝나자 그들의 퀸 행렬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떠나
자 공식적으로 두 번째 부인 재클린 을 보내는 ‘2분간의 묵념’이 이어졌 웰링턴아치까지 런던 중심을 약 2㎞
로크를 담은 것이다. 피카소가 창시했 다. 군인도, 경찰관도, 행인도 잠시 서 행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74세
던 입체주의 작품이 보이는가 하면, 서 눈을 감았다. 장례식 당일이 임시 큰아들 찰스 3세 국왕과 왕실 인사들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도 있어 그가 공휴일로 지정돼 영국 전역의 기업· 이 비통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이
만년에 유파를 넘어섰음을 짐작하게 영업장이 문을 닫았고, 런던 증시도 후 여왕의 관은 윈저성의 세인트조지
해 준다. 고 이 회장이 피카소 도자 작 휴장했다. 여왕을 배웅하기 위해 영국 교회 지하 납골당에 안장됐다. 평생의
품을 선호한 것은, 회화에 비해 값이 이 잠시 멈춰 섰다. 반려자인 남편 필립공의 옆자리였다.
싸면서도 활달한 상상력이 담겨 있어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서거 이후 57년 1952년 만 25세의 나이로 국왕에 즉위
서 창조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한 만에 국장으로 거행된 이날 ‘세기의 한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
다. 장례식’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로 불렸던 영국 식민지들의 독립, 전
이번에 공개되는 ‘퐁투아즈 곡물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 후의 궁핍, 냉전과 공산주의 몰락, 유
장’(1893)의 피사로와 ‘센강 변의 크 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세계 주요국 럽연합(EU)의 창설과 영국의 탈퇴 등
레인’(1875)의 고갱은 사제지간이다. 정상과 왕족 500명을 포함한 2000명이 역사의 격변을 두루 겪었다. 군주제의
피사로는 증권중개인이었던 고갱의 재 참석했다. 런던에는 수백만명이 장례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여
능을 알아보고 인상주의 풍경화를 지 행렬을 직접 보기 위해 운집했다. 왕은 평생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
도하며 미술계 입신을 도왔다. 영국 메트로폴리탄 경찰은 이날 “단 면서 신중한 언행과 검소한 생활 태도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 일 이벤트로는 2012 런던올림픽과 지난 로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11
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는 6월 플래티넘 주빌리(여왕 즉위 70주년 일간의 장례 일정 동안 영국 전역은
피카소가 흠뻑 매료됐다는 후문이 있 기념행사)보다 큰 보안 작전”이라고 물론 전 세계에서 추모 열기가 이어졌
다. 피카소는 르누아르 사후 그의 초 밝혔고, 일간지 더 타임스는 “사상 을 정도다.
상을 그릴 정도로 존경했다. 달리의 최대 규모의 정상회담”이라고 전했다.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는 내년 대관
‘켄타우로스 가족’(1940)과 미로의 나흘간 웨스트민스터홀에서 30만명의 식을 열 예정이다. 여왕 서거를 계기
‘회화’(1953)는 초현실주의 풍을 보 일반인 참배를 마친 여왕의 관은 약 5 로 군주제 폐지 논의, 영국의 식민지
여준다. 스페인 출신의 두 작가가 파 분 거리인 웨스트민스터사원으로 옮겨 였던 영연방 일각의 탈퇴 주장이 잇따
리에서 활약할 때 역시 스페인 태생인 지면서 영면을 향한 마지막 여정에 최 를 조짐을 보여 찰스 3세 국왕이 만만
피카소가 전폭적으로 후원했다는 사실 종적으로 올랐다. 찮은 도전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
이 흥미롭다. 장례식에 앞서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을지 주목된다. [서울신문] 김소라 기
샤갈의 ‘결혼 꽃다발’(1977~1978)은 는 여왕의 96년 생애를 기리며 1분에 자,백민경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