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남미복음신문_845호]2022년 8월 19일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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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오피니언                                              2022년8월19일 금요일


       ■ 여용주 목사의 역사탐방 ■                                         슈나이더 선교사와 함께 브라              렉산더 라티머 블랙포드 선교              상파울로, 그리고 브로따스에
                                                                질 최초 장로교회 노회인 히오             사는  브라질에  도착하자  마            장로교회가 조직되자, 선교사
                브라질 개신교회 역사 30                                  지 쟈네이로 노회(Presbitério do     자  사이먼튼을  지근에서  도            들은 브라질 첫 노회인 ‘히오

                                                                Rio de Janeiro)를 설립하였습       우면서, 동시에 상파울로 시              지 쟈네이로 노회’를 설립하
                        사이먼튼        게 되어, 이듬해인 1862년 1          니다. 이날, 그는 최초 브라질            와 내륙으로 선교사역의 지경              였는데, 이 때 블랙포드 목사
                      선교사의 사        월 12일 브라질의 첫 장로교            인 장로교회 목사 죠세 마노에             을 넓혔습니다. 그는 1863년            가 초대 노회장으로 선출되었
                      역             회인 히오 지 쟈네이로 장로교            우 지 꽁쎄이썽(José Manoel de      에 상파울로로 이주함과 동시              습니다. 또한, 1867년에 사이
                        1859년  8    회(Igreja Presbiteriana do Rio de   Conceição)를 안수하였습니다.   에 상파울로 장로교회(Igreja          먼튼 목사가 사망하자 그가 히
                      월 12일, 히      Janeiro), 오늘날의 히오 지 쟈       1867년에는 중남미 최초 개신            Presbiteriana de São Paulo)를 세  오 지 쟈네이로 교회의 제 2대
                      오  지  쟈네      네이로 제 1 장로교회를 조직            교 신학교를 설립하여 브라질              워 1865년에 조직하였고, 2            담임목사로 부임하였고, 선교
                      이로에 도착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인 목사 양성에 초석을 놓았습             년 전부터 접촉을 가져오던 상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됨에 따
       한 사이먼튼 선교사는 포르투              현재 히오 지 쟈네이로 시 중            니다.                          파울로  내륙도시  히오  끌라            라 장로교회의 노회가 세 개
       갈어를 배우는 동안, 주로 영             구 시우바 쟈르징 가 23번지             그러나 선천적인 간 질환을              로(Rio Claro)의 죠세 마노에         가 되어 1888년 브라질 첫 독
       국인과 미국인 공동체에서 예              (Rua Silva Jardim, 23, Centro, Rio   가지고 있던 그는 그해 황열     우 지 꽁쎄이썽 신부를 개신              립대회인 브라질 대회(Sínodo
       배인도와 설교사역을 하는 동              de Janeiro)에 서 있습니다.        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수              교 신앙으로 인도하여, 그와              Brasil)를 조직하게 되었을 때,
       시에, 브라질 사람들에게 영               사이먼튼 목사는 아내 헬렌             개월간의 투병 끝에, 결국 유             함께 브로따스 장로교회(Igreja          그가 초대 대회장으로 선출되
       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              머독(Helen Murdoch)과의 사이      명을 달리 하고 말았습니다.              Presbiteriana de Brotas)를 세우  었습니다.
       다. 당시 브라질에 영어 교육             에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그            그의 유해는 상파울로 시 꼰              고 같은 해 조직하였습니다.                              여용주 목사
       유행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포             러나 그녀는 1864년, 딸을 낳          쏠라썽  대로의  개신교  묘지            그 해 말, 히오 지 쟈네이로와                (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르투갈어가 어느정도 능숙해               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사           (Cemitério dos Protestantes da
       지자, 그는 1861년에 성경학            망하였습니다. 큰 슬픔에도 불            Consolação)에 묻혔습니다. 아          남미복음신문 www.nammicj.net
       교를 개설하였는데, 첫 주에는             구하고 그는 사역을 계속하여,            내의 이름을 붙인 딸 헬렌은
       학생이 두 명이었습니다. 그              같은 해 브라질 첫 개신교 신            여동생 엘리자벳 부부가 맡아
       러나 매주 학생들이 늘어, 한             문사인 “복음신문사(Imprensa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본 신문의 간추린 소식을 카톡으로 받고 싶으
                                                                                                          신 분들은 “카톡 아이디 kkkiu79”를 친구추가
       달이 되지 않아 서른명을 훌              Evangélica)”를 창립하였습니         블랙포드 선교사의 사역                             하시고 “소식원함”이라고 메세지를 보내주시
       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이들              다. 이듬해인 1865년에는 처            사이먼튼 선교사의 여동생 엘
                                                                                                          면 매주 카톡으로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중 대다수가 개신교 신앙을 받             남인 블랙포드 선교사와 친구             리자벳의 남편이자 처남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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