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남원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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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남사                        수은당 신도비
                   03         수은당(樹隱堂) 김충한(金沖漢:생존연도 미상)은 남원에서 태어나 고려 때 예조판서를

                  고려        지냈고, 조선이 건국되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송경

             예조판서           만수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던 두문동(杜門洞) 72현(七十二賢) 중 한 분이다.
               김충한            송동면 두신리 두곡마을에 김충한을 배향한 두곡서원은 1766년(영조 43) 창건되어
                            100여 년간 유지되어왔으나 1864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지고 1945년 두곡
                            서원지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두남사라는 사당을 세워 수은당 김충한을 모셨다.
                            현재 두곡마을에 수은당 신도비(神道碑)와 세거비(世居碑)가 있다.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무령부원군 유자광(柳子光)은 남원 고죽동에서 1439년에 태어나 조선왕조의                최다 임금을 모신

                                                                                              04
          최고의 권력자로서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다섯 왕을 모신 인물이다.
          고죽동은 유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의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들이 누렇게 말라
                                                                                    남원의 관료

          중추부지사 유규(柳規)의 서자(庶子)로 태어나 건춘문(建春門) 갑사로 봉직하다
     3    죽었다 하여 누른대, 황죽(黃竹), 고죽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유자광은                                    유자광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출전하여 공을 세우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1468년 남이의 역모사건을 계기로 남이 · 강순 등을 처형한 뒤 익대공신(翊戴功臣)
          1등에 책록되고 무령군(武靈君)에 봉해졌다. 1498년(연산군4) 유자광은「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김일손(金馹孫)이 사초(史草)에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은 것을 빌미삼아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킴으로써 수많은 충신이 죽거나
          축출되었다.
            그 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의거에 참여하여 이번에는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무령부원군으로 봉해졌다. 그러나 다음해 대간 · 홍문관 · 예문관 등이
          들고일어나 탄핵을 계속하여 훈작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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