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남원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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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마을 시비 교룡산국민관광지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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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당(金三宜堂)(1769년∼1823년)은 남원이 낳은 여류시인 중 한사람이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요,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여류 시인
아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김삼의당
전원의 풍치를 생애 동안 260여 편의 많은 한시와 산문으로 남겨 놓았다.
김삼의당은 남원의 서봉방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삼의당이란 당호
(堂號)로만 전해져 오고 있으며 나이 18세에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 하립과 결혼했다.
김삼의당은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가정에 묻혀 살았던 여인으로
남원기네스 인물
살면서 부부의 애절한 정과 농촌의 어려운 가정생활, 규방 안의 예절과 우리 고장 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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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과 산수의 아름다움을 주옥같은 언어로 표현하였다.
花 滿 枝 (활짝 핀 꽃가지)
帶方城上月如眉 대방성 위의 달은 눈썹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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帶方城下花滿枝 대방성 아래 꽃은 흐드러졌네
生憎花開芳易歇 피었다 시드는 꽃 나는야 싫어
每羨月來長有期 기약하고 오는 달 부러워하지
삼의당 김씨의 생애와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삼의당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1930년에 광주에서
<삼의당 김부인 유고(三宜堂 金夫人 遺稿)>가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남원문화원에서는 그녀의 문학세계와 생애를 더듬어 더욱 높이 빛내기 위하여 1991년 11월 15일 그가 태어났던
서봉방 부근의 교룡산 기슭 교룡산국민관광지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또한 그녀가 살았던 마을로 추정되는
향교동 유천마을 주민들은 김삼의당을 기리기 위해 마을회관 옆에 시비를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