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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21. 07.13 (화) NO.4405
■ [송광호기자가 다녀온 북한 6] 기적 같은 이산가족 상봉...
▲ 평양 공항
남쪽이지, 여기가 자기 집입니까” 하며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것이다. 겠어요?” 그와의 대화는 그걸로 그쳤다. 며칠 후
남쪽 그 어부 집에서 그를 얼마나 기다리겠는가를 눈물을 닦았다. 면 평양을 출국해야 한다. 한국에선 경기도 이천
개성 출신 R책임지도 안내원 얘길 다시 꺼낸다. 수년 뒤 그는 평양 을 잘 알아도 북강원도 이천 지명을 아는 사람
공항 공항장(책임자)이 돼 있었다. 당시 그를 만난 게 내게 얼마나 은 없었다. 역시 북쪽 지역이니까 금세 아는 것
행운이었던가를…. R지도원이 상상도 못 했던 북강원도 내 외조모친 같다. 더구나 지인이 있다니.
척을 너무 쉽게 찾아줬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신청조차 않았던 외할머 이틀 후 아침 안내원은 호텔 프런트로 나를 불
니 친척이다. 서울태생인 나는 이산가족이 아니었다. 부친 쪽은 북강 러냈다. 내가 나타나자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돌
원도 대지주로 해방 전 서울에도 이미 집에 두세 채 있었다. 해방 후 리며 “아, 동무. 수고하오. 근데 당원입니까?”
엔 식구들 전부가 남으로 내려와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은 단 한 명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외조모친척 얘
없었다. 다만 외가 쪽으로 북강원도에 외조모 친오빠 두 명 친척만 기라고 직감했다. 찾아낸 것이다. 당원이든 아니
있다고 들었다, 외조부는 일찍 타계했고, 어머니는 외동딸로 아무 형 든. 세상에··· 이렇게 해서 수십 년 떨어져 있던
제도 없었다. 해방 후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자 외조모는 나를 돌본다 외가 친척을 기적같이 찾게 됐다. 도대체 나 같
고 38선을 넘어왔다 고향으로 다시 못 돌아갔다. 어느 때면 가끔 고 은 이런 일도 있을까. “송 선생! 시간이 없어 강
향과 형제를 그리며 눈물짓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외조모친척을 R 원도 이천군까지는 못갑니다. 이천에서 가까운
이 하루아침에 찾아준 것이다. 도시가 사리원(황해북도)이요. 사리원에서 만나
두 번째 방북 시기였다. 취재 일정이 끝나갈 때 R지도원이 뜬금없이 기로 조직했소. 그땐 여기 특별 일정도 없으니
물었다. “송 선생은 우리 조국에 가족들이 아무도 없소?” “없어요. 모레 아침 일찍 차로 떠납시다. 친척과 사리원에
뿌리는 (북)강원도지만 해방 후 모두 서울로 내려왔지요. 다만 어머 서 만나 점심 후 평양으로 다시 돌아옵시다.”(계
니고 향도 북강원도인데 외할머니 친오빠만 두 명 있다고 들었어요. 속)
외할머니는 38선 넘어 서울 딸(어머니) 집에 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못 가고 세상 떠났지요.” “(북)강원도 어디요?” “이천군 가래을 마을 ■ 필자소개-춘추사(지
이라고, 깊은 산골짜기라던데.” “어? 이천군? 거긴 내 가까운 친한 방신문연합) 전모스크바
동무가 책임자인데. 이천군은 나도 가본 적이 있소.” “그래요? 나는 특파원/강원도민일보 북
가족 찾기 신청도 안 했지요. 촌수로 따져 가까운 친척도 아닌 것 같 미특파원/재외동포 신문
아서.” “이름과 나이는 알고 있소?” “외조모 조카 이름은 알지만, 나 방송편집인협회 전 대표
이는 몰라요. 외조모 오빠들도 다 세상 떠났겠고, 성은 장 씨고 조카 /대한 언론인회 국제분
과위원회 간사/대한민국
이름은 장재웅이라 합니다. 외조모가 늘 장재웅이, 장재웅이 해서 외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우다시피 했지요. 현재 나이는 아마 65세 정도? 60대 중반이 상이 국제보도상수상, 한국신
될 것 같네요.” “찾고는 싶소?” “찾으면 좋겠지만 갑자기 찾을 수 있 문상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