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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22.09.23    (금) NO.4464           7■
       ■ [송광호기자 북한탐방 하이라이트] 후계자로 김정일 선택















                노인의 지난 김일성후계자 얘                                                 있을 것이다.
          채     기다. 후계자 편싸움이 한창일                                                그즈음 김정일은 영화배우 성혜림(37

                때 대부분 측근들은 김정일보                                                 년생)에 빠져있었다. 성혜림은 이미
         다 김평일(김성애 아들)을 원했다한다.                                                  딸 하나를 둔 유부녀였으나 김일성 몰
         김정일은 키도 작고 여자에만 관심 두고                                                  래 관저에 데려다 살았다. 당시 김영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국가원로격인 최                                                  순(탈북무용가)은 37년생으로 성혜림
         현과 최용건 두 최씨가 갈라져 서로 다                                                  과 같은 나이였다. 평양예술학교 동기
         른 후계자를 추대했다. 둘 다 일제 강점                                                 생이다. 그녀는 “성혜림이 내 가까운
         기 김일성과 함께 투쟁한 항일유격대원                                                   동무”라는 발설로 인해 요덕 정치범
         들이다. 이들은 사망후에는 대성산 혁명                                                  수용소에 가족들과 함께 끌려가 9년간
         열사릉에 묻힌다. 혁명열사릉은 애국열                                                   고생하다가 홀로 살아남아 서울로 온
         사릉보다 한 등급높은 국가열사 묘소다.                                                  탈북여성이다.
         혁명열사는 장례행진을 하고 길 연도에                                                   김 씨는 내게 “성혜림은 원래 월북작
         주민들을 동원시켜 고인을추모한다.                                                     가    이기영(조선작가동맹위원장/평양
         “당시 최현(조선인민군 총사령관/현재                                                   애국열사릉 묘소)의 장남 이평(김일성
         최룡해 부친)은 김정일을 지지했고, 최                                                  대학 연구사)부인인데, 김정일이 5호
         용건(북 인민위원회 상임위 위원장)은                                                   댁(김일성가계)으로 데려갔다”고 말
         김평일을 적극 밀었지요. 최현은 일자무                ▲ 모스크바 성혜림의 묘                     했다. 당시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4살
         식(문맹)으로 전혀 글을 모르고 완전 독                                                 연상이었다. 김정일은 성혜림을 강제
         고다이에요. 최용건은 ‘국가지도자는                 라.”하며 비밀에 부쳤다. 1994년 김일            이혼 시킨 뒤 그의 관저에서 살게 한
         키도 커야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최용               성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김정일에게 제              것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러한 사실을
         건 아들과 무척 친했기 때문에 사실 김               대로 인계 못한 부문이 핵관련사항이라               전혀 몰랐다. 그때 장남 김정남을 낳
         평일이 정권을 잡았으면 했어요.”                  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핵관련 원자재              은 것이다. 한때 먼저 시부모였던 이
         그러나 결국 김일성은 김정일을 택했고,               가 필요하다는 제의서와 보고서가 들어               기영 작가는 그때 충격으로 소설작업
         최용건은 큰 실망을 했다. 차츰 김일성               오기 때문에 김정일은 차츰 돌아가는 상              을 중단했다는 설도 있다.
         부자와의 사이에도 틈이 생겼다. 최용건               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존의 북한시
         부인은 중국인 왕 씨다. 최용건이 죽었               스템 때문이다. 핵문제는 어찌 보면 손               김정일 영화, 연극 등 심취
         을 때 김일성부자와 사이가 꽤 벌어져                자인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새삼 할아버               ‘5대 가극’을 만들어
         있었다. 김부자는 연도에 늘어선 주민들               지 김일성의 유훈정치를 따라 ‘핵과 경              잠깐 성혜림에 대해 부연한다. 성혜림
         에게 슬프다는 눈물도 못 흘리게 지시했               제’를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고향은 원래 경남 창녕군이다. 대
         다한다. 왕씨 부인은 중국으로 돌아갔다. 채노인 얘기다. 김정일은 여자와 영화밖                           대로 대지주 만석꾼 집안이다. 명문가
                                             에 몰랐다. 일찍이 일본 (조)총련에서
                                                                                3대독자인 부친 성유경과 모친 김원주
         60년대부터 늘 “총대 끝에 핵을”                 선물한 오도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볐다.              (일제강점기 ‘개벽’잡지 여기자)사
         김일성은 60년대부터 늘 “총대 끝에 핵              초창기 북한에 오도바이가 거의 없을 때              이 태어났다. 성혜림은 서울 종로 계
         을”하고 외치며 ‘핵과 경제문제’에                 였다. 눈에 드는 여자는 누구든 추적하              동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성혜림이 서
         관심을 쏟았다. 당시 핵실험장소로 정한               곤 했다. 이 때문에 부친 김일성은 “너             울사대부속초등교를 나와 풍문여중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하에도 함께                는 왜 여자들만 따라 다니느냐”고 꾸중              다니던 1950년 집안전체가 월북했다.
         다녀왔다. 처음엔 비날론(합성섬유)을                했을 정도다. 김정일은 영화, 연극 등              현재 성기학 노스 페이스(North Face/
         발명한 월북인사 이승기박사를 중심으                 예술부문에 심취해 ‘5대 가극’을 만들              영원무역)기업회장이 성혜림과 같은
         로 핵 연구팀을 꾸렸다. 특히 20세 미만             었다. *피바다 *꽃 파는 소녀 *한 자위            가까운 친척이다. 역시 창녕이 본향인
         인재들만 멤버로 뽑았다. 북에는 핵 관               단원의 운명 *금강산의 노래 *밀림아 이             성 회장은 서울사대부고 동기생이다.
         련해선 몇몇 측근만 알고 있었다. 김정               야기하라 등이 그것이다. 김일성도 그의              재수 후 서울대 상대를 나와 노스 페
         일은 비록 1974년부터 뒤에서 국가권력              재능을 인정했다. 후계자 구도에서 김평              이스 아웃도어 의류 등 사업을 크게
         은 맡았지만 핵 관련내용은 잘 몰랐다고               일에서 김정일로 마음을 굳힌 것이 아마              일구었다. ***
         한다. 김일성은 “이건 내 아들도 몰                김정일 재질을 나름 다시 평가한 영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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