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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 3·1운동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13
상하이로 불러 모아 향후 진로와 방책을 통일적으로 추진할 최고기관 설립을 모색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현순은 3·1운동 발발 소식을 상하이 내 주요 외국 언론은 물론 3월 9일 새벽
미주에 있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지방총회(호놀룰루)
에 긴급 전보로 알렸다. 이 소식을 전달받은 중앙총회장 안창호는 3월 9일 오전
11시 중앙총회 부회장 백일규를 비롯한 임원진과 협의한 직후 이승만·정한경·서재
필과 북미 및 멕시코의 각 지방 한인사회에 독립 선언 소식을 전달하는 한편 미국
내 주요 언론에 3·1운동 발발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San Francisco Examiner, San Francisco Chronicle, The Los Angeles
Times 등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은 3월 10일부터 한국의 3·1운동 발발 소식을 일
제히 보도하였다. 그 가운데 San Francisco Chronicle는 3월 10일자와 3월 14
일자 1면 전면에 두 차례에 걸쳐 “Korea Issu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Envoys To Press Claim at Paris”란 기사를 반복해 싣고 3·1운동 발발 소식을 비
중있게 보도하였다. 동부의 『뉴욕 타임스』의 경우 3월 13일에 “Korean Proclaims
Independence”이란 제목으로 처음 3·1운동 소식을 전파해 서부의 언론과 시차를
보인다.
2. 미국 언론의 3·1운동 보도 확산
1) 영문 독립선언서의 보도
대한인국민회에 의해 3·1운동 소식이 전파된 직후 미국 언론들은 이후 계속
해서 들려오는 한국독립운동 소식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통신원과 선교사들이 전
한 소식을 기반으로 3·1운동의 확산 소식과 일본의 탄압, 그리고 만행 소식들을
속속 보도하였다. El Paso Herald는 3월 13일자에 한국인의 호소를 억압된 수백
1)
만 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유를 향한 것이라 하며 3·1운동 소식을 전했다.
Harrisburg Telegraph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고 기차역은 만여 명의 군중
1) “Korea’s Plea For Freedom Says It Represents Voice Of Millions Oppressed-,” El Paso
Herald, March 13, 1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