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크리스천헤럴드(1970호)_1208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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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hristianherald.com                  오피니언                                                 2022년 12월 8일 (목)     13


           소통하는 교회


                                        소통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때 당시뿐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속에 대한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           여야 바르게 살 수 있는지를 세상
                                      까맣게 잊어버린다.                    어떤 것인가? 우리의 정체성에            과 뜻을 우리에게 완전하게 계시           에 외쳐야 한다.
                                       그런데 몇몇 교회와 그리스도             대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           해 주신다.                        예수님은 어두운 죄악의 세상
                                      인들의 반응도 어떤 사람들에게             는 사람인데 예수라는 단어와 연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            에 오셔서 어둠을 밝히셨다. 하나
                                      는 많은 실망감을 줄 수 있는 태           관 지어 이름이 지어진 것이 아니           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어서           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도를 보였다. 비참한 사고를 당한           라 그리스도인, 기독교 등 그리스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에 동참하였            분명하게 지적하셨고 잘못된 것
                                      가족과 친구들의 슬픔을 이해하             도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을 가만두지 않으셨다.
                                      고 함께하는 것 보다 그들을 비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그리        라고 불리게 되었다. (참고 하이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
                                      난하고 정죄하는 말들이 무성하             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 32문)         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감
                김   병   학   목사
                                      였다.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구약 성경            그러므로 이런 혼란스러울 때            당하셨다.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주님의교회 담임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대상은 ‘왕,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           있어야 한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
                                                                                                                            에  대하여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
         얼마 전 한국에서는 너무나 놀랍                                                                                                  지 않고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
         고 마음이 아픈 일이 일어났다. 대                                하나님의 공의 세우고 세상의 빛으로                                             로 하여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부분 잘 알고 있는 이태원 참사이                                         어두움을 밝혀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
         다. 너무나 안타까운 그 소식을 들                                                                                                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
         은 사람들은 슬퍼하고 분노하였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
         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                                                                                                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금은 함께 슬퍼하고 함께 위로할            생각할 것은 무엇인가? 소셜미디            대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이었다.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때인데 이런 슬픔에 의견이 나누            어나 신문 등 여러 매체에서 다양           그런데 예수님을 ‘기름부음을 받            는 왕으로서 죄와 마귀와 대적하           게 세상을 맡기실 때 잘못과 죄에
         어지고 서로 비난하는 모습이다.            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그리스도’          여 싸워 이겨야 한다. 그래서 하          대하여 비난하고 정죄하라고 하
         특히 정부 당국자들의 무책임한             그러나 이럴 때 우리가 생각할 것           로 불리게 되었고 우리에게 그리            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세상의 빛           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르게 인
         말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던             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스           스도는 왕으로서 우리를 말씀과             으로서 어두움을 밝혀야 한다. 그          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이제 세
         참사이었기 때문에 당한 일이기             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으로 다스리시고 죄에서 승             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몸을            상을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멈
         도 하지만 감춰진 것들이 드러나            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야           리하는 삶을 살도록 늘 지켜 보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추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슬
         면서 더더욱 실망감을 주고 있다.           한다.  이번  문제뿐  아니라  이와        하시고,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           드리고 이 어둡고 깜깜한 세상을           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외로
         예전에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부            유사한 앞으로 일들에 대하여 분            로서 자기 몸을 화목제로 드려서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운 사람들 곁에 있어 주는 교회가
         터 그 이후 이번까지 정부의 대응           명하게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 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늘 우리를             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야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땅에 그
         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자기 마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그            한다. 또한 선지자로서 복음의 증          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더욱 안타깝다. 그동안 언제나 그           음에 옳은 대로 의견을 말하고 반           리스도는 선지자로서 우리의 구             거 자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          을 보여줄 때이다.

           어리버리 서목사의 낚시 전도법 (3)



                                                          전도란 무엇인가?





                                      도는 문자 그대로 도(길)를 전하           되는 것을 본다. 이런 맥락으로 생          귀가 아프도록 듣고, 배우고, 실천         하는 마음으로 전도라는 것을 했
                                      는 것이다. 여기서 ‘길’이라 함은          각하면, 결코 예수님도 전도에 성           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전          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나 뿐 아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          공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좋았던 기           니라, 이 일을 하는 다른 학생들도
                                      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고 싶다             억들보다 굉장히 무섭고 부끄럽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가지고 버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근본이신             면 처음부터 전도에 대한 바른 개           고 피하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스에 오르긴 마찬가지였다. 뭔가
                                      예수님을 전하고 그 예수님의 길            념을 가지고, 그 정리된 바른 개념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           죄지은 사람처럼 당황한 얼굴로
                                      을 소개하여 그 길을 함께 갈 수           위에 구체적인 전도의 방법을 정            다 불편함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리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           리 잡고 있었다.                   고 수없이 외웠던 원고를 읽어 내
                                      듣고 들었던 전도인 것이다. 이런                                         ‘왜 나는 전도에 대해 이리도 부         려가야만 했다.
                 서   민   수   목사
                                      측면에서 전도의 핵심이신 예수                                          정적인 감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이처럼 나는 전도라는 단어를
                  방주교회 담임
                                      님과 그의 오심은 모든 이에게 복                                        있을까?’ 전도는 이미 내가 마주          떠올리면 두렵고 부끄럽고 민망
                                      음이다. 복된 소식인 것이다. 이                                        하거나 대면하기 힘들어 피하고            하기까지 한 여러 부정적인 감정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            복된 소식이 전도에 빠져서는 안                                         싶은 토픽(topic)이 되어 버렸다.       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전도해
         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도의                    믿음없는                 나는 그 이유를 청소년기 경험에           야 한다는 생각과 전도하자 하는
         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            핵심인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이들에게                 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이런 부
         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            고,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좋은                                        때 교회에서 하는 노방전도를 나           정적인 생각과 전도에 대한 두려
         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소식, 구원의 소식, 하나님의 통                 생명의 도를                 가게 되었다. 노방전도 중에서도           움을 가지고 있던 내가 어떻게 전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치하심을 전하는 것이다. 바로 이                                        가장 무서웠던 것 중 하나는 버스          도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로 돌변
         52:7)                        것이 전도다.                               믿도록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하게 되었는지 이것은 분명 하나
           내가 처음 전도에 대해 정리하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나 성도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버          님의 은혜다.
         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전도          나 목사들이 말하는 전도는 이와                                         스 안에서 껌을 판매하는 소위 껌            내가 이처럼 전도를 부정적이
         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야 했다.          는 좀 다른 개념이 더 첨부되어                                         팔이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 아         고 왜곡된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전도의 사전적인 의미는 ‘종교를            있다. 항상 교회 건물과 연결하여                                        이들은 부모가 계시지 않았기에            이유는 전도에 관한 두 가지 사실
         세상에 널리 알려 그 종교에 대한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결국은 전            잡혀 나는 매일같이 이런저런 방            이런저런 모습으로 생활 전선에            (진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
         믿음을  가지도록  인도한다’라는           도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사람            법을 동원해 전도에 대한 개념을            서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전도는 내가 다니는 교회 건
         뜻이다. 내가 믿는 종교(기독교)           을 데려다 놓은 것으로 전도에 대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려             보육원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물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
         를 알리는 것이 바로 전도다. 성도          한 개념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런           보고 표도 만들어 보는 등 내가 할          버스에서 여러 가지 생필품을 승           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도
         들이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에            데 전도에 대한 바른 개념이 정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도           객들에게 파는 호객행위를 많이            의 다양성에 대한 바른 개념이 없
         게 자신이 믿는 생명의 도를 믿도           가 안 되면, 시작은 비슷하다 할지          를 정리하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           했다. 나는 마치 그 보육원 아이          었다는 것이다. 나의 학습된 경험
         록 인도하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라도 그 끝은 상당히 다른 결과치,          한 것처럼 나는 모태서부터 교회            들처럼 불편한 눈빛으로 쳐다보            치와 무지함에서 오는 왜곡된 전
         우리가 말하는 전도인 것이다. 전           아웃컴(outcome)을 만들어 내게         를 다니다 보니 전도에 대해서는            는 많은 승객 앞에서 복음을 판매          도의 개념이 오랜 기간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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