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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22.        06.14 (화)  NO.4450
       ■ [송광호기자 북한탐방 하이라이트] 미주 교회 북에 천문학적 돈 투입















         임    목사는 북한을 돕던 중 무기실형              당시 미주 교회 등지에서 임 목사를 통              교회다. 그녀 역시 서너 군데 교회를
              을 받고 복역하다 31개월 만에 석            해 북녘땅에 투입된 돈은 천문학적 숫자              옮기다가 임 목사설교가 맘에 들었다
         방돼 세상에 꽤 알려진 토론토 성직자이               였다. 그러나 헌신적인 미주동포들의 후              고 했다. 솔직히 내겐 임 목사가 그리
         다. 그는 지난 96/97년부터 북한을 드나            원결과는 참담했다. 임 목사는 북한 반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를 만나려고
         들기 시작했다. 당시 북에서 직접 캐나               국가 정부전복음모란 죄명으로 종신형 (              교회사무실에 남긴 두 세 차례 메시지
         다 친북대표로 임명한 70대여성(고 전충              무기노동교화 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               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대형교회 담임
         림씨 부인)을 통해서였다. 그는 북을 지              다. 그것이 캐나다정부의 줄기찬 노력               목사라 바빠 그런지 문턱이 꽤 높게
         속적으로 다녔다. 10여 년간 150번 이상            끝에 만2년 7개월 만에 겨우 석방되지              느껴졌다.
         방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주 한인                                                  하루는 K후배가 집에 놀러 왔다. 그는
         교회들로부터 모금한 대북원조금으로                                                     내가 방북 신청할 때마다 찾아와 못
         수천 톤의 식량, 수만 장 이불, 겨울옷,                                                가게 말리곤 했다. 식구처럼 가까운 K
         안경 등 각종 구호물품을 북한에 전달했                                                  는 내 방북이 늘 불안하고 맘에 걸렸
         다. 북한에 라면공장, 가발공장, 국수공                                                 나 보다. “괜찮아. 내 염려 말고 자
         장, 컴퓨터 학원, 학교, 양로원, 농장                                                 네 교회 임 목사 걱정이나 해요, 나
         등을 세웠고, 어업등 여러 부문에 전폭                                                  같이 이름 없는 기자 나부랭이는 아무
         적인 지원을 했다.                                                             것도 아니야. 임 목사는 지금 잘나가
         북한 경제특구인 함북 나선(나진, 선봉/                                                 는 것 같지만, 자칫 실수하면 한 방에
         옛 웅기)지구와 인근 회령, 군포 등지에                                                 가는 수가 있어. 그때는 무슨 죄명인
         도 양로원등 9개 복지건물을 건립했다.                                                  줄 아나. 국가전복 음모죄야.” “형
         이 지역은 1998년 토론토 큰빛교회에서                                                 님, 나는 임 목사님이 줄곧 북한에 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 선교사로 정식                                                  니는 것도 안 좋아해요. 하지만 무슨
         파송된 전종석 은퇴장로(25년생)가 주축                                                 국가전복 음모죄? 정치와는 전혀 무관
         이 됐다. 전 장로는 “건물만 세운다고                                                  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후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매달 운영비,              ▲ 임현수 목사                           에 내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을 때 스
         인건비, 유지비 등으로 경비가 약3천 달              않았던가. 나는 그를 만난 일도, 대화              스로 경악했다. 그전 연길 거주 조선
         러씩 들어갑니다”하고 설명한다. 전 장               한번 나눈 적도 없다. 다만 그가 설교를             족 L씨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었기 때
         로는 10여 년간 중국 연변지역과 북한               잘한다는 소문을 간혹 들었다.                   문이다. 당시 L씨가 정색을 하고 일러
         특구인 나선지구 지원 작업에 여생의 온                                                  준 말이다. “송 기자님, 북한 어느
         정성을 쏟고 있었다. 연길시 연평 병원               수십억 원 후원금, 북한 돕다가                  고위급인물이 비밀이라며 일러준 얘
         명예원장을 비롯해 북한 라진시 양로원                하루아침에 추방된 미주교포들                    기가 있어요. 제가 조선족 중국공민이
         명예원장, 라진 원봉/군포 유치원 및 탁                                                 라 가끔 솔직하게 털어놓고는 해요.
                                             그는 교인 30여명 남짓한 개척교회(한국
         아소 명예원장, 원정리 탁아소, 회령 문              최초 동요작곡가 박재훈 목사가 설립한               공화국(북한)에서 가장 위험인물은 기
         산리 양로원 및 수북유치원 명예원장 등               장로교회)를 인계 맡은 지 불과 수년 만             독교인이라는 거지요. 요놈(기독교인)
         을 맡고 있었다. 이희아 장애인 피아니                                                  들은 겉으론 선교사라는 탈을 쓰고 베
                                             에 수천 명 신자로 만들어 토론토 최대
         스트 (네 손가락뿐인 제1급 선천성장애               교회로 우뚝 성장시킨 젊은 목사였다.               풀어주는 척하면서 항상 우리가 망하
         인소녀)가 기증한 3천 달러 피아노도 그              그의 설교는 인기가 높았다. 한 예다.              기만 바라는 반동분자들로, 절대 요주
         가 마련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임현수                                                   의해야 할 놈들이라고 전합디다,”
                                             한국에서 약 20년 전에 한 독실한 개신
         목사 수감 이후 북한선교일은 중단될 수               교인 K후배가 이민 왔다. 그는 한 군데             북에 수년간 수십억 원 후원금을 내고
         밖에 없었다.                             교회를 정하려 했으나 토론토교회 숫자               북한을 돕다가 순간적인 오해로 하루
         그때 가장 큰 지원사업은 함북의 한 호                                                  아침에 추방된 미주교포들을 알고 있
                                             가 워낙 많아 쉽게 결정을 못 했다. 수
         수를 막아 농토로 만든 일이다. 이 사업              개월 간 매주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며             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북한은 절
         은 미주교포들의 헌신적인 특별후원으                 목사설교를 듣던 중 어느 날 “형님, 이             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스폰서의 개발                                                  다. 평소 아무리 억만금을 갖다줘도
                                             제 교회결정을 했어요”라며 밝은 모습
         지원이 끊겨 중단되긴 했지만, 한때 함               이다. 큰빛교회로 결정했다고 한다. 고              한번 그들 체제를 흔든다는 의심을 받
         북 주민들 사이 큰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최홍희 태권도총재 부인 역시 다니는                으면 끝장이다. (북한탐방 13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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