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27PNS
P. 16
2022년 5월 두 번째 호(통권 제 27 호)
16 OC지역소식 사람과사회 People&Society
해안선 따라 칙칙폭폭 ~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OC 기차여행(중)
종착지부터 역으로 즐기기
다른 맛, 둘 중 하나 선택
역사가 있는 신비의 미션
샌환캐피스트라노는 1800년대 멕
시코에서 부터 올라온 스페니시
카톨릭 신부들이 미션이라는 대
장정을 시작한 관문 중에 한 곳으
로 당시의 흔적을 잘 찾아 볼 수 있
는 아름다운 곳이다. 샌환캐피스
트라노 역에서 내려 오른쪽에 있
는 타코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시내쪽으로 한 블락 걸어 들어가
면서 좌회전을 하면 대각선 거리에
성당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입장료가 있다. 최근 약간 인상 1811년, 당시 농사가 최고의 풍 작은 마당에 있는 분수대에서 반 의 남은 벽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고 난 뒤 5시 쯤 기차역으로 돌
되어 성인14불, 시니어 12불인데 년이었고 가축들도 최고를 기록해 짝거리며 부서지는 물방울을 바 벽을 끼고 돌다 보면 마치 그리스 아와 기찻길 옆으로 늘어선 지역
십몇불을 더 내면 일년 내내 무료 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절이라고 라보며 역사를 음미해보는여유도 나 로마의 어디쯤 와 있는 듯한 아 주민들의 화랑과 카페를 구경하고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권하고 평가하지만 다음해인 1812년 이 가져봄직하다. 이곳에는 작은 동 련한 느낌도 갖게 된다. 이곳이 아 기념품을 구입하며 인근 공원에
싶다. 일년 멤버가 되면 4인 가족 무 곳을 강타한 지진으로 인해 교회 판이 새겨져 있는데 제1차 세계대 까 본 4개의 종 반대편 쪽이다. 서 휴식도 취한 후 다시 기차역으
료입장이 되거나 99불을 내고 후 건물 여러 곳이 파괴됐고 지진을 전에 참전했던 상이용사 폴 아르 입장할 때 받을 수 있는 설명 녹 로 돌아와 6시 16분 출발 기차에
원자가 되면 가족관계가 아니어도 알리려 종을 치던 소년 2명을 포함 비소 기념패다. 퇴역 후 이곳에서 음기를 갖고 다니면서 해당 번호 올라타면 7시 7분에 풀러튼역에
8명이 수시 무료입장 할 수 있다. 해 무려 40명이 희생됐다. 기념관 1995년 세상을 떠나기 까지 무려 를 따라 누르면 잘 설명해 준다. 도착한다.
미션의 역사를 대략 살펴 보면 에 들어가면 그때 목숨을 잃은 사 42년간 종지기로 섬겼다. 영어를 포함 중국어 등의 서비스 딱 하루에 걸친 일인 여행경
1775년 10월30일, 캐톨릭 선교사 람들의 이름이 기록돼있다. 그 때 다시 그곳을 나와 높다란 벽을 가 있지만 한국어 서비스는 아직 비 10달러의 알찬 기차여행이다.
인 샌후안카피스트라노가 창립했 무너진 교회 건물을 다시 재건하 따라 걷다보면 바로 그 벽이 1812 없다. 단 잊지말자. 돌아오는 기차는 막
지만 8일만에 지역 인디언들의 공 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고 지금도 년 지진으로 무너진 거대한 교회 약 2-3시간 정도 이곳의 관람을 차다.
격을 받고 신부 한명이 목숨을 잃 유적으로 남아 있다.
게 되면서 잠시 문을 닫게 되었다. 1835년 민간의 손으로 넘어가
다음해인 1776년 11월 1일에 세라 이루 말 할 수 없이 황폐해진 이 곳 여행코스 자세히 보기
주니페로 세라 신부에 의해 재설 은 1849년 캘리포니아의 불같이
립 된 것으로 알려졌다. 1797년과 일어났었던 골드러쉬에 영향을 받
1806년에 추가로 새로운 교회 건 게 됐고 1850년도에는 잠시 캘리 캘리포니아 역사의 보석 을 지으며 북상했다. 그들은 모두
물들이 세워져서 당시로는 캘리포 포니아 대학으로 그 모습을 바꾸 Jewel of California History 21개의 성당을 건립하기에 이른
니아에서 가장 큰 선교교회였다 기도 했다가 1863년 다시 캐톨릭 다. 이곳은 그중 7번째로 완공됐 종교적 의미, 교육과 깨달음의 장
는 기록이 있다. 성당으로 회복되었다. 플러튼 역에서 떠나는 기차는 아 다. 캘리포니아 역사의 기초가 되 소라고 알려진 곳이다.
미션 중앙 광장 침 9시 16분이 적합하다. 8시 30 었으며 아직도 주 내 곳곳에 엘 1811년, 당시 농사가 최고의 풍
은 아름다운 나무 분쯤 역에서 만나 티켓머신에서 카미노레알(번역하면 ‘왕의 대 년이었고 가축들도 최고를 기록
와 꽃들이 만발하 목적지를 선정해 카드나 현금으 로’)이라는 길이라고 명명된 길 해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절이
고 한 가운데 있는 로 결재 할 수 있다. 들이 바로 이들이 그 당시 지나간 라고 평가하지만 다음 해인 1812
조각상이 있는 연 최초 이 장소에 성당이 건립 길목이다. 년 이곳을 강타한 지진으로 인해
못에는 커다란 연 된 것은 1775년 10월 30일, 그러 1797년과 1806년 2차례에 걸 교회 건물 여러 곳이 파괴됐고 지
꽃과 잉어들이 살 나 일주일 뒤에 토착민들과 스페 친 증축으로 당시로는 캘리포니 진을 알리려 종을 치던 소년 2명
고 있다. 그곳을 돌 인 군인들 사이의 쿠메야이 전쟁 아에서 가장 큰 선교교회였다는 을 포함해 무려 40명이 희생됐
아 뒷켠으로 가면 이 일어나면서 스페인 군인들은 기록이 있다. 토착민들만이 살던 다.
인디언들에게 목숨 선교를 위해 멕시코(당시 스페인 이 땅에 처음으로 주거지 다운 주 기념관에 들어가면 그때 목숨
을 잃은 신부의 묘 령)에서부터 원정선교에 동행했 거지가 건설되면서 마을이 중심 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돼
지가 있고 조금 더 던 신부들과 함께 다시 샌디에고 역할로 자라나 현재 오렌지카운 있다. 그때 무너진 Great Stone
들어가면 지진에 미션으로 퇴각했다가 다음 해인 티의 발상지가 됐다. Church 교회 건물을 다시 재건
목숨을 잃은 두 소 1776년 11월 1일에 주니페로 세 요즘에도 제비축제 등이 열리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고 바로
년이 지진을 알리 라 신부에 의해 재건립됐다. 면서 매년 삼 십 만 명 이상의 관 옆에 새로운 성당을 지어 ‘미션
며 목숨을 걸고 치 교회가 농업, 상업, 공업 등으 광객들이 전세계에서 찾아온다. 바실리카’라고 명하고 수도원과
고 있었다는 4개의 로 그 영역을 넓혀가며 토착민들 캘리포니아 성장 배경의 핵심이 함께 건립했다. 허물어진 벽 잔해
종들이 걸려있는 이 차츰 영입되기 시작했다. 바 며 캘리포니아 선교의 보석이라 는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 여전히
벽의 잔재가 있다. 하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성당 불리운다. 450년 동안 역사, 문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