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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 3·1운동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19
20)
Times(7.16) 등 수많은 곳에서 일본의 한국인 탄압과 만행 기사가 보도되었다.
미국 언론이 이처럼 일제의 만행을 적극 보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가장 큰
요인은 시시각각으로 제보하고 있는 기독교 목사와 선교사들의 역할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한 미국인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체포와 탄압 때문이었다. Great Falls
Daily Tribune은 3월 20일자에 재한 선교사들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한국인에 대
21)
한 탄압과 일본 군인들에 의해 미국인 여성이 폭행당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한국에서 활동했다고 밝히 쓰잉(E. W. Thwing) 목사의 일제 만행 보고는 미
국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보고를 토대로 The Washington Post(5.25) 22)
23)
와 The Rockford Morning Star(5.27) 는 일본이 한국인을 야만적으로 탄압하고
가혹하게 고문하였다고 폭로하였다.
3·1운동에 대한 일본의 가혹한 만행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한 것은 재한 선
교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미국 장로교 기독교연합회에서 알린 보고였다. The
New York Times는 7월 13일자와 16일자에 ‘미국 장로교’와 ‘교회협의회’란 이름
으로 보고된 일제 만행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고문 만행과 기독
교 마을의 폐허 등을 집중 보도하였다. 이 가운데 7월 13일자 기사는 언더우드가
24)
조사한 제암리교회의 방화학살만행의 내용을 상세하게 담았다. 그리고 이런 만
행의 모든 책임은 일본에게 있음을 규정하고 학살자에 대한 처벌과 통치 방식의 개
25)
혁을 요구하였다. 재한 선교사들의 보고 중에는 한국의 기독교회와 기독교인들
에 대한 탄압 내용이 많이 들어있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 정서가 강한 미국인과 미
국사회에서 볼 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만행 소식이었다.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한국인 기독교인들의 탄압과 피해사실에 깊은 동정을 갖고 일본의 만행 사실을 보
도하였다.
20) “Says Japanese Killed 361 Koreans,” New York Times, July 16, 1919.
21) “Korean Revolution Wildfire; Japs Rule Upheld As Reform By Religious Investigator,”
Great Falls Daily Tribune, March 16, 1919.
22) “Atrocities In Korea,” The Washington Post, May 25, 1919.
23) “Japs Scted Like Lawless Savages In Korean Revolt - American Missionary Tells of Attacks
on Girls, Old Men, and Children,” The Rockford Morning Star, May 27, 1919.
24) “Horrors in Korea Charged to Japan - Presbyterian Church Makes Official Report of
Murders and Tortures,” The New York Times, July 13, 1919.
25) “Says Japanese Killed 361 Koreans - Council of Churches Amplifies the Charges of
Wholesale Atrocities by Police,” The New York Times, July 16, 1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