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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 3·1운동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21
에 의한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보도는 멈추지 않았다. 1919년 3월부터 1920년 9
월까지 조사한 돌프(Fred A. Dolph)의 보고서에 따르면 친일 기사는 50여 건에
불과한데 한국 독립을 동정하고 지지한 친한 기사는 9,000여 건에 달했다고 한
26)
다. 이로 보면 미국 언론의 친한 동정보도는 3·1운동을 계기로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미국 언론의 집중 보도는 3·1운동을 국제
적인 독립운동으로 확대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제를 국제적인 화제거리로
만들어 주었다.
3·1운동 보도를 통해 나타난 미국 언론의 친한 동정 여론은 미국 의회까지 영
향을 주었다. 1919년 6월 30일부터 1920년 3월까지 스펜스 상원의원, 노리스 상
원의원, 맥코믹 상원의원, 프란스 상원의원, 펠란 상원의원, 토마스 상원의원, 메이
슨 하원의원 등 여러 미국 의원들이 미국 의회에서 한국 독립을 지지하고 한국독립
동정안을 만들어 투표까지 진행시켰다. 이같은 사실은 3·1운동에 대한 미국 언론
보도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들이 윌슨 대통령이 추구한
국제연맹 창설에 반대하기 위한 논리로 한국문제를 거론한 정치적인 배경을 무시
할 수 없겠지만 미국 언론에 비친 3·1운동의 파급력이 미국 의회까지 확산된 것만
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미국 언론이 한국 독립문제에 관심을 갖고 보
도하게 된 배경은 무엇 때문인가. 한국에서 주재원으로 활동한 신문 통신원의 역할
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통신원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재한 선교사들의 역
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재한 선교사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 선교에 임하
라는 오랜 지침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이 일어나자 정의와 인도, 그리고 박애라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솔직하고 냉정하게 한국인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당시 우
리 민족이 가진 선전홍보의 역량으로는 국제사회에 친한 동정 언론을 움직이기 어
려웠다. 이런 가운데 재한 선교사들이 본국을 향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보낸
각종 보고서와 편지는 3·1운동의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증거물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기독교계와 언론은 한국문제에 관심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
국 기독교인의 박해와 교회 탄압에 보고는 최소한 일말의 기독교정신을 갖고 있던
미국 언론의 입장에서 볼 때 정의와 인도가 파괴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동정하지 않
26) 노재연, 『재미한인사략』(상) (미주 나성 아메리칸인쇄사, 1951), 159-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