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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 언론의 3·1운동 보도 시각
미국 언론의 보도를 통해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3·1운동이 우리 한국인만의
독립운동이 아닌 전 세계 피압박 민족을 대변한 자유와 정의를 위한 혁명이었다
는 사실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3·1운동의 비폭력적 평화시위를 단순히 ‘봉기
(Uprising)’, ‘Revolt(반항 또는 반란)’로 보도하지 않고 ‘Revolution(혁명)’의 성격
으로 보도하였다. 즉, 한국인의 3·1운동을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항거는 물론 새
로운 정치 체제, 즉 자유롭고 정의로운 자주 독립국가를 꿈꾸고 이루려는 혁명으
로 보았다.
3·1운동을 혁명으로 보도한 미국 언론은 아주 많다. Great Falls Daily Tribune
은 3월 10일 한국인의 3·1운동 발발 소식을 처음 보도하면서 “Revolution From
Japanese Rule is Announced”이라 했다. The Duluth News Tribune은 4월 27일
자 보도에서 “American Observer Reveals Facts in Korean Revolution”라 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3·1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미국에 돌아온 맥클래치는 한국인의
3·1운동을 혁명으로 간주했다. 그가 4월 6일자에 San Francisco Examiner에 기
고한 글 제목은 “Korean Uprising An Unarmed Revolution”이었다.
위에서 언급된 언론 기사들이 미국 언론을 대표한다거나 아니면 양적으로 미
국 언론 대부분이 이런 ‘혁명’이란 단어를 썼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언론에서 차지
하는 비중이 어떠하든 간에 3·1운동이 당시 미국인과 미국 언론의 눈에 단순한 독
립시위운동으로 비추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향후 한국의 학
계에서 3·1운동의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새로 규정하고 정의할 때 미국 언론에서
제기한 ‘혁명’의 시각과 관점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고 하겠다.
맺음말
미국 언론의 3·1운동 보도는 3월과 4월, 그리고 5월까지 집중 보도되는 모
습을 보인다. 그 가운데 3~4월에 가장 많이 보도된다. 하지만 3·1운동으로 나타
난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1919년 12월까지 계속 보
도되고 있다.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이 거세지는 1920년에 들어서도 친한 동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