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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이은선│ 왜 3·1운동을 기독교인들이 일으켰다고 하는가?  57



               겠다고 하는 결의를 했고 파리에 대표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때 이승만,

               민찬호, 정한경 이런 사람들이 대표로 선출이 됐지요. 이분들은 다 기독교인들입니
               다. 그리고 이승만의 이름이 제일 강조됐습니다. 이들이 윌슨에게 청원서를 냈던 것
               입니다. 11월 25일자로 청원서를 작성해서 보냈고, 이 청원서가 윌슨 대통령에게
               갔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3·1운동의 뿌리를 이야기 할 때 안창호가 중심이 된
               대한인국민회를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일본에 있는 동경 유학생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전영택이라고
               하는 청년이 선교사의 집에 갔다가 우연히 영문 잡지에서 미국 대한인국민회에서

               주도한 기사를 읽은 것을 시작으로 발전해 2·8독립운동이 일어났는데 2·8독립운
               동의 배경에는 YMCA가 있습니다. YMCA는 당시 일본 동경대학 교수이며 존경
               받는 기독교인이었던 요시노라는 사람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민주주의를 강
               의했고, 거기에 우리 유학생들이 많이 영향을 받은 거지요.
                  그래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미국 기독교 교포들이 먼저 이 일을 시작했
               고, 이것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YMCA를 중심으로 2·8독립선언을 했

               고,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신한청년당의 주요 멤버들이 상해한인교회 신자들이었다는 것입
               니다. 여운형은 전도사였고, 선우혁도 전도사였고, 김철은 거기에서 세례 받은 사
               람이고, 또 한진교라는 분은 회계집사였고, 장덕수는 일본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온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신한청년당이라고 하는 단체가 상해한인교회를 중심으
               로 만들어진 단체라고 볼 때 3·1운동의 배후는 크게 3가지인데, 미국에서의 독립운
               동, 일본에서의 독립운동,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입니다. 이 세 가지가 다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될 것입니다.
                  저는 3·1운동을 크게 3단계로 나누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준
               비단계, 실행단계, 후속단계,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야 되는데 준비단계가 매우
               중요 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일본경찰이 손병희한테 왜 3·1운동에 가담하게 되
               었느냐고 물어봤을 때 이미 해외에서 우리 동포들이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 대표
               를 파리에 보냈기 때문에 거기에 호응하여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

               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1운동이 시작점이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클라이
               막스였다고 하는 것, 그리고 준비단계에서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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