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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성결교회와 신학 제41호 (2019 봄) 특별대담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내면적으로 보면 선교사들의 영향이 상당히 컸습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외쳐졌을 때 상해에서 민족자결주의를 홍보하는 기관
이 미국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졌고, 윌슨의 문서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선교사와
미션스쿨을 통해 보급하였으며, 영화를 만들어 상영을 했더라고요. 바로 그것이
우리나라 옆에 있는 중국에서 있었고 그 필름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에서도 상영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에 일어났던 홍보가 선교사들을 통해서 한국에도 전달
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특별히 노리스 선교사는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우리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갔는데 그 사람의 주장을 보면 선교사들이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사주하진 않았
지만 선교사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조선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하고, 종교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라고 하는 민주적인 의식을 가
르쳐 한국 사람들한테 널리 전파가 되었고 이것이 근간이 되어 독립운동이 일어났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기독교를 주목하고 선교사를 주목 한 거지요. 정리
하자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선교사들의 영향이 있
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은선 말씀하신대로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의 민주주의 발전의 제도나 의식을
수용했기 때문에 일제 탄압이 더 견디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러
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3·1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와 기독교 두 종교의 역할을
어떻게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박명수 저는 3·1운동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준비단
계, 실행단계, 후속단계입니다. 준비단계에서는 기독교가 한 일이 큽니다. 미국의
운동, 일본, 상해도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면 국내에서의 실행단계는 어땠을까?
3·1운동이 일어난 배경으로 크게 4그룹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천도교 그룹, 장
로교 그룹, 감리교 그룹, 불교 그룹입니다. 이렇게 4그룹이 있는데 독립서명서에
33인의 서명이 있지 않습니까?
최린의 자서전에 의하면 처음 4명의 대표가 나오는데, 첫 번째가 손병희, 두 번
째가 길선주, 세 번째가 이필주, 네 번째가 백용성입니다. 손병희는 천도교 대표, 길
선주는 장로교 대표, 이필주는 감리교 대표, 불교 대표는 백용성이에요. 재미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