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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성결교회와 신학 제41호 (2019 봄) 특별대담
이은선 해외에서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신앙을 가진 분들이 미국, 동경,
상해에 커넥션을 이루어 3·1운동을 어떻게 일으켰는지 중요한 내용을 말씀해 주셨
습니다. 그럼 3·1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을 당시 국내 상황은 어떠했는지 이야기 해
주시지요.
박명수 3·1운동의 원인을 보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해외 동포
들이 이 기회에 우리도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일본치하에 살기 어렵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이
루어졌기 때문에 3·1운동이 일어난 것이지요. 외적인 요인과 내적인 요인이 다 같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한청년당이 1918년 11월 말에 크레인이라는 윌슨의 특사에게 보낸
청원서를 보면 당시 한국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3가지로 이야기하
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신적인 박해인데 기독교를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배우고,
근대화를 해보려하는 세력을 일본이 가차 없이 박해하고, 105인 사건을 예로 들어
일본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을 가장 큰 것으로 설명하고 있고요. 두 번째는 정치
적인 박해인데 일본이 한국 사람을 2등 국민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고 열등국민으
로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대우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경제적인 문
제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본을 제한하고 일본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데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러한 세 가지를 중요한 요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본사람들이 한국은 일본이 식민지로 만들어서 많이 발전하고
한국 사람들은 다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국내에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3·1
운동을 통해서 온 세계에 알리게 된 거죠. 이런 점에서 국내에서의 반응이 매우 중
요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리면 당시 안창호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미국에 대표단만
파송한 것이 아니고 러시아에도 대표단을 파송하고 국내에서도 대표단을 파송하
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파리에 가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정작 국내에 있는
사람들이 일본치하에서 살기 힘들다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 파리에 간 대표단이 하
는 행동이 힘을 받지 못 한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운동이 중요합
니다. 국내에 한국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호응했다는 것은 당시 무단통치하에 사람
들이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