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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이은선│ 왜 3·1운동을 기독교인들이 일으켰다고 하는가?  61



               않습니까? 천도교, 불교는 대표가 한 사람만 나오는데 기독교는 두 사람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기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 이렇게 두 그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로교 그룹은 평안도의 이승훈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었고, 이 그룹이 제일 먼
               저 세계정세를 인식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한 그룹입니다. 1918년 9월 선천에서 장
               로교 총회가 열렸을 때 상해에서 여운형과 피치 선교사가 왔고, 그 사람들이 세계
               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이승훈과 서울에 내려와서 이상재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두 번째로 서울에 있는 박희도를 중심으로 한 감리교 그룹이 있었어요. 감리

               교는 YMCA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지요.
               여기에 학생들이 가담을 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박희도가 YMCA입니다. 그리고
               3·1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승동교회와 정동교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더라
               고요. 거기가 학생들의 모임장소였어요. 정리하자면 3·1운동의 출발은 이승훈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도 장로교 그룹과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박희도의 감리교와
               학생그룹 이 두 그룹이 3·1운동을 먼저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천도교가 우리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요. 최린의 자서
               전을 보면 최린이 손병희를 찾아갔고 이미 기독교에서는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
               으며 천도교가 함께하지 않으면 민족 종교로서 어렵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니까,
               손병희가 ‘그러면 해야지’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이것을 통해 볼 때 국내에서 장로
               교 그룹과 감리교 그룹이 먼저 시작했고 천도교는 나중에 참여를 했는데 분명한
               사실은 불교는 집단적으로 참여한 것 같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기독교 그룹의 단점은 3·1운동을 일으키려면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윤치호, 이상재 같은 사람들이 가담하길 원하지 않았
               습니다. 과거에 너무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원하지 않았어요. 천도교는
               손병희라는 대표적인 인물이 있었고 이것을 진행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되는데 기독
               교는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립운동을 위해서 내놓을 당장의 현금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천도교 돈 5000원을 빌려 자금을 공급을 받아 독립운동을 한 거지
               요.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촉매제가 독립선언서 아닙니까. 독립선언서를 나눠주

               고 독립선언서를 읽어가는 과정 가운데 3·1운동이 일어났지요. 인쇄를 해야 되는
               데 천도교가 보성 인쇄소를 가지고 있으니 거기서 인쇄를 했습니다. 3·1운동이 진
               행되는 과정에서 천도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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