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성결과신학 V.42
P. 75

74  성결교회와 신학 제41호 (2019 봄)    특별대담


            만이 대표로 부각될 수 있는 거예요.

                첫 번째는 한국을 대표한 민족대표다. 그래서 파리로 대표로서 파견되었다.
            두 번째는 이승만은 윌슨의 제자다. 세 번째는 미주 교포들이 도와줘야 한다. 이승
            만이 대통령이 되고 안창호가 내무총장 아닙니까. 안창호가 미국에서 돈을 가져와
            서 임시정부 건물을 사고 월급을 줬어요. 임시정부와 미국교포들의 관계가 매우 중
            요합니다. 요즘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러시아, 만주 독립운동만 연구를
            많이 하는데 사실 미주의 독립운동과 3·1운동, 임시정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깊
            은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은선   당시 이승만이 임시정부를 여러 곳에 세우는데 배치가 된 요인을 잘 설명
            을 해 주셨습니다. 최근 학계에서 3·1운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좌우 양
            진영의 견해가 상당히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해석의 차이점 내지 또는 흐름을 설
            명해 주십시오.



             박명수   3·1운동에 대해 전통적으로 기미독립선언서가 중요합니다. 3·1운동이
            확산되는 것도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만든 사람들이 33인입니다. 이들이 종교인들이에요. 공산주의 용어로 말하면 부르
            주아들이지요. 내용이 평화 비폭력운동입니다. 공산주의는 무력투쟁을 강조합니
            다. 공산주의자들이 무엇을 가장 싫어합니까? 미국 아닙니까? 공산주의자들의 입
            장에서 부르주아 세력, 비폭력주의, 미국 이 세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독립선언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뒤에 일어난 노동자와 농민이 주도

            하는 무력투쟁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좌익에서는 3·1운동의 본류는 독립선언서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장봉기, 노동자의 봉기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 3·1운동의 주체가 부르주아인데 부르주아는 진정한 혁명을 일으킬
            수 없고 노동자와 농민이 주도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런 점에서 “부르주아가 주
            도 된 3·1운동을 인정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이고, “3·1운동의 배경이 윌슨의 민
            족자결주의, 미국은 세계 제국주의의 꽃인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소련의 볼셰

            비키혁명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이런 점에서 임시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자기들의 입장
            과 전혀 다른 것이고요. 그래서 임시정부를 와해시키는 공작을 하게 된 것이지요.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