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남원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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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인 1602년(선조 35)년에 설립된 기로회는 남원의 관료들과 유학자 중에서도
                   57       선각향로(先覺鄕老)들에 의하여 조직된 순수민간 자생단체로서 사회봉사와 정화를

                  최초        목적으로 한 이념적 자생단체이다.
             사회단체             1936년 이후에는 일제의 집회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경로당이란 명칭을 사용하다가
               기로회          1988년에 본래 조직의 뜻을 살려 남원기로회로 개칭하게 되었다. 나이에 따라 노계소,
                            소계소로 이원조직으로 운영되기도 하였는데 기로회 경내에 유허비(遺墟碑)에는 노계소
                            (老契所)는 선원사, 관왕묘, 유애묘, 금수정 등을 건립, 관리하였으며, 소계소(小契所)에서는
                             요천의 제방, 산림 감시·감독, 농업용수에 필요한 보 관리 등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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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                    최초 여성 예술단체 권번



                                        1921년 이현순에 의해 남원권번(남원국악원 전신)이 창립되었고, 광한루(廣寒樓)
                                      경내에 설치되었으며, 이백삼이 초대 조합장직을 맡았다. 일제강점기인



                                      국악인들에 의해 춘향제(春香祭)가 봉행되어 현재 시발점이 되었다. 권번은
    38                                1931년 광한루 안에 춘향사당 건립 시 기금마련에 힘썼으며 권번 출신
                                      조합제도로 운영되었으며 시문, 음악, 습자, 가무, 예의, 시조 등을 가르쳤으며
                                      권위 있는 국악인을 많이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권번출신 예술인으로는 조갑녀(1923~) 명무가 있다. 당시 남원
                                      권번에서 악기 연주를 가르치던 부친 조기환씨의 영향으로 7세에 권번에
                                      들어가 예인 교육을 받았으며. 제1회(8세) 때는 춘향제향시 헌화를 하고,
                                      2회와 3회에는 선배들과 검무와 화무, 4회(12살)에는 혼자 승무를 춰 명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이후 1941년까지 해마다 춘향제 행사 시 승무와 검무,
                                      민살풀이 춤을 선 보였고 전국의 행사에 초청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남원 권번의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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