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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성결교회와 신학 제41호 (2019 봄) 특별대담
이은선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했던 역할은 무엇
이 있을까요?
박명수 3·1운동이 어떻게 확산되어 가는가에 대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3·1운동
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쓴 볼드윈 교수가 여러 사례를 정리한 내용을 보면 3·1
운동이 확산되는 과정 첫 번째가 서울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각 지역에 배포한
것입니다. 3·1운동 집회에 참여하면 독립선언서 몇 부씩을 나누어 갖는 거지요. 그
것을 가지고 자신의 연고지로 가서 그 지역 유지한테 전달을 하는 거예요. 두 번째
는 유지가 자기 나름대로 그 지역에서 조직하는 것입니다. 적당한 날짜를 잡아 독립
운동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문제는 누가 배포하고, 누구에
게 전달되고, 전달받은 사람이 어떻게 조직하여, 어떤 날을 택해서 독립운동 했는
가라고 하는 거지요.
당시 학생그룹이 중요한 역할을 했더라고요. 지방으로 독립선언문을 배포한
사람들이 학생들이었고, 그들은 서울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연희전
문학교, 보성전문학교, 이화여전, 신학교 등 학생들이 정동교회 혹은 탑골공원 이
런 장소에서 모임을 가지고 몇 부씩 받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학
생들과 미션스쿨의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것을 가져가서 대부분 자기교회 목사님
에게 전달을 했더라고요. 그리고 목사님이나 혹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상의해서 조직하고 가장 모이기 좋은날인 장날에 3·1운동을 한 거지요.
볼드윈의 주장을 따르면 대부분 각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기독교
인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적인 확산에 있어서 기독교가 매우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33인의 대표로 손병희가 있기 때문에 천도교가 주도한 것 같지만
지역에서는 천도교가 주도한 지역보다 기독교가 보다 많고 특별히 평안남북도, 전
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지역에서는 절대적으로 주도를 했고 강원도, 함경북도에서
는 천도교가 주도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기독교가 더 큰 확산을 했다고 볼 수 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3·1운동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운동이라 하
는데 방방곡곡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기독교인이 살던 공동체를 중심으로 확산됐
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