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남원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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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규모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3곳을 뽑으라면 광한루, 관왕묘, 용성관을
들 수 있다. 이 건물은 남원 고대건물의 삼걸(三傑)로 불린다. 66
● 광한루 남원.
광한루는 조선조 초기 재상이었던 1419년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고대건물 3걸.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44년 전라관찰사 정인지가 광한루로 개칭하였다. 광한루,
그러나 이때 1597년 정유재란으로 인해 불타고 현재 건물은 1626년 당시 남원부사인
신감(申鑑)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왕묘,
광한루의 앞뒤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용성관.
호남제일루는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란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엔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 관왕묘
관왕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로 등록되어 있다. 4 남원기네스 문화역사
중국 삼국시대 명장인 관우(關羽)의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이 모셔진
곳이다. 원래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장군 유정(劉綎)이
자기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관운장을 모시기 위해 선조 32년(1599) 남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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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밖에 세웠던 것이다. 그 후 영조 17년(1741)에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
● 용성관
용성관은 통일신라 신문왕 11년(691)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다른 지역에서 출장온 관리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조선 태조를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셨으며, 백성을 돕는다는 뜻에서 휼민관(恤民館)이라고도
불렀다. 정유재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과 숙종 때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을
맞아 또 다시 불탔다. 지금은 70m 가량의 옛 건물 받침부와 용성초등학교
본관 계단으로 쓰는 석물 1점이 남아있다. 용성관 석물(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04호)은 난간 양쪽에 반원을 그리듯 둥글게 처리하고 표면에
도깨비 상을 조각해 놓아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