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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성결교회와 신학 제41호 (2019 봄) 특별대담
박명수 3·1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이것이 해외에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더라고요. 일본이 선전을 잘 해서 한국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으로 아니
까 그것이 아님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파리강화회의에 있는 대표위원들에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 약사이며 33인 대표 가운데 한 사
람이었던 이갑성이 자기 병원에 같이 있는 선교사 스코필드한테 종로에서 독립만세
를 외칠텐데 이것을 찍어 세계에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파고다 공원
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데 맞은편 건물 2층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찍었습니다.
스코필드의 사진을 통해 3·1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거지요.
서울에서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평양에서는 장대현교회와 남산현
교회가 중심이 되어 3·1독립만세를 부르는데 이 소문을 마펫 선교사도 듣고 매퀸
도 듣고 변하설도 듣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보려고 현장에 참석했어요. 그 내용
을 자세히 기록해서 미국에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들이 증언역할을 처음부
터 의도적으로 한 거예요. 이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기록해서 세계에 알려야겠
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스코필드, 다음에 평양에는 마펫, 그 다음에 언더우드
도 있지요. 언더우드는 제암리교회에 가서 열심히 조사해 세계에 알렸습니다.
특별히 노리스 선교사는 3·1운동의 내용을 친척에게 보냈고 이 사람은 곧 바
로 출국을 했더라고요. 그리고 미국 국회에서 3·1운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를 증언해 결의안을 발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파리강화회의에 1차적으로는 김규식이 갔고 다음에는 여운형 동생 여운
홍과 장덕수도 갔습니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만 청원서를 보낸 것이 아니라 세
계 장로교 연맹에도 우리가 독립을 원하니 이것을 지지해달라는 내용을 보냈고, 미
국 장로교 총회가 미국정부에도 청원했습니다.
이은선 선교사들이 국제적으로 여론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걸로 보입니
다. 일본이 당시 우리나라 언론을 탄압하여 우리나라 스스로 알릴 길은 적었지만,
선교사나 장로교, 성결교와 같이 국제단체 네트워크들이 한 일을 연구할 필요가
있겠네요.
박명수 그렇죠. 성결교 같은 경우 존 토마스라는 감독이 우리나라에 있었는데
그 집에 영국 의사가 여행을 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토마스가 영국 의사한테

